경제·금융

백담계곡 자지러진 봄노래

만해 기거했던 화엄당엔 全씨 미화한 사진봄을 시샘하는 냉랭한 바람에도 두터운 얼음을 갈라내며 질주하는 백담계곡의 물소리는 봄의 도래를 막지 말라는 시위처럼 웅장했다. 드문드문 잔설을 머금은 설악의 표정은 삶을 달관한 반백의 노신사처럼 더 없이 너그러워 보였다. 3월의 오후. 설악의 넉넉한 품에 안긴 백담사는 새봄 단꿈에 잠긴 듯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으로 알려진 화엄당에서는 의인을 기리는 대신 죄인을 미화하는 부조리가 연출되고 있었다. 화엄당 안팎은 온통 군사독재자 전두환을 미화하는 글과 사진들로 치장돼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깊은 산사에도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거듭되는 정의와 현실의 괴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설악은 그저 백담사를 굽어보며 깊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님의 침묵'처럼. 1,300년의 깊은 역사를 간직한 백담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만해스님의 자취가 짙게 배어 있는 곳이다. 지금도 절 마당에는 만해의 흉상과 시비, 만해 기념관과 교육관 등이 들어서 백담사가 곧 '만해의 절'임을 실감케 한다. 다만 절의 한 복판 만해가 기거하면서 글을 썼던 화엄당만은 만해의 자취는 간 데 없고,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의 위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화엄당 문간에는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이 기거했던 방입니다"라는 푯말이, 툇마루에는 새벽녘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전두환씨의 부지런함과 소탈함을 추켜 세우는 사진과 해마다 홍수로 범람하던 절 앞 개울에 수심교(修心橋)를 놓았다는 글이 전씨의 행적을 미화하고 있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한계사(寒溪寺). 한계령 중턱 장수대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듭된 화재로 신라 원성왕 6년(790년) 이곳을 떠나 북쪽 30리 지점에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운흥사(雲興寺)로 바꾸었다. 이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던 운흥사는 고려 성종 3년(984년)에 변란으로 없어졌다가 성종 6년(987년)에 옛터의 북쪽 60리 지점에 다시 옮겨서 심원사(深源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로도 화재는 이 절의 숙명처럼 거듭됐다. 백담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때는 세종 20년. 어느 날 주지스님이 꿈에서 대청봉에서 담(潭)을 세어 100개가 되는 지점에 절을 세우면 삼재(水ㆍ火ㆍ風)를 면하리라는 계시를 받아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백담사는 의병운동과 동학혁명을 벌이던 청년 한용운이 승려생활을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만해선사는 이 절에서 불교유신론(1910년)과 님의 침묵(1925년)을 짓는 등 빛나는 자취들을 남겼다. 현재 백담사에는 만해기념관과 만해당, 만해교육원 등이 들어서 있다. 만해기념관에는 800여점의 만해 유물들과 후학들이 만든 조각품 초상화 등도 선보이고 있으며 교육관은 만해시인학교와 만해불교사상강좌 등에 활용되고 있다. 백담사가 세간에 커다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1988년 11월 23일부터 2년동안 이 곳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전씨가 머물다 간 이후 백담사는 크게 발전(?)했다. 백담사를 들어가던 오솔길은 차가 드나들도록 콘크리트로 포장됐고, 절 앞 개울을 가로지르는 수심교가 놓여졌다. 이를 업적이라고 해야 할지, 횡포라고 해야 할지.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백담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의 한적함은 사라지고, 그 길을 자동차들이 경적소리를 울려대며 오르내리고 있다. <여행메모> ◇대중교통 ▦서울 상봉터미널(02-495-5501~5)~속초 직행버스 타고 용대리에서 하차, 4시간 소요 ▦원통~간성경유 속초행 직행버스 또는 시내버스 이용, 백담사입구 하차. 30~40분 간격 운행, 20~25분 소요. ▦백담사 입구~백담사 셔틀버스(033-462- 3009) 운행 ◇자가운전 ▦서울~홍천, 44번 국도(82km, 1시간40분) ▦홍천~철정 검문소~신남(남면)~인제~원통, 44번ㆍ46번 국도(72km, 1시간30분) ▦원통~관벌마을~삼거리(좌회전)~용대 삼거리(우회전), 46번 국도(16.4km, 0:20 소요) ▦용대 삼거리~백담사 입구(1km, 1~2분) ◇숙박= 백담사에서는 1박 2식을 제공하는 사찰체험 프로그램을 시행중이다. 1인당 1만원. (033)462-6969 ◇주변명소= 설악산, 백담사계곡, 수렴동계곡, 12선녀탕계곡, 알프스리조트 ◇문의 ▦국립공원 설악산 관리사무소 백담분소 (033)462-2554 ▦백담사 만해기념관 (033)462-6969 ▦인제군청 관광과 민박정보제공(033)460-2366 인제= 글ㆍ사진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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