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정운찬 "중용·배려·비판의식, 청년들 갖춰야 할 덕목"

정운찬 동반성장硏 이사장 '원로에게 듣는 인문학 강연'

스코필드 박사·조순 교수·어머니, 내 인생 이끈 스승들의 가르침

지금 청년들에게도 전해지길


지난 1960년대 중반 고교생 정운찬은 은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하명'으로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다. "국력을 키우고 이 나라의 가난과 빈부격차를 해결할 학문을 공부하라"는 엄명은 당시 꿈이 없던 한 고교생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스승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가르친 조화와 균형성장을 위한 경제발전론은 이후 그를 학자의 길로 인도했고 훗날 총리 자리까지 오르게 한 좌표가 됐다.

정운찬(68·사진)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는 최근 서울 삼육대가 마련한 '원로에게 듣는 인문학'강연에서 "스코필드 박사, 조순 교수 그리고 어머니는 내 인생을 만들어준 인물들"이라며 "그들에게서 배운 중용과 배려,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은 내 인생을 이끈 가장 큰 가르침이며 지금 청년들에게도 전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를 만난 것은 1960년으로 정 이사장이 13세 때다. 1889년 영국 태생의 캐나다인인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6년 한국에 들어와 세브란스의전에서 병리학 교수, 선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 만행 사진을 찍어 전 세계에 알린 인물.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34번째 독립운동가'로 불린다. 1970년 별세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기도 하다. 스코필드 박사가 1960년대 서울대 수의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비를 대줬던 가난한 학생 중 한 명이 정 이사장이었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상경 직후인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친이 갑작스레 작고한 후 7년 동안 점심을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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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 박사는 청소년기에 올바르게 자라도록 지도해주고 내 인생을 만들어준 은인이지요. 항상 정직하고 나라의 힘을 기르는 일에 힘쓰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공계를 전공해 당시 선망이었던 '충주비료'에 취직하고 싶었던 그에게 스코필드 박사는 "부자들이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길을 찾으라"며 상경계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불의를 보면 비판하라는 가르침은 1986년 서울대 교수직을 내걸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 운동을 주도하는 동력이 됐다.

한국은행 총재, 서울시장을 지낸 조 교수는 경제학자의 꿈을 키워줬다. 1970년대 말 정 이사장이 미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할 때 "나이 마흔에 외국에 있으면 외롭다"며 회유해 서울대 교수로 불러들였다. 정 이사장은 2002~2006년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홀로 5남매를 키운 모친(작고)에게도 담담히 존경을 표했다. "어린 아들에게도 '자네'라고 부르고 한 번도 반말로 대한 적이 없던 분"이라며 "밥상에서 손이 닿지 않는 것은 먹지 말라며 분에 맞게 살라는 가르침도 주셨다"고 회상했다. '3번 이상 간곡히 부르지 않으면 가지 마라'는 훈계는 훗날 관로에 오르는 데 스스로 경계로 삼았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수많은 제안을 고사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 5번의 러브콜을 받고 총리직을 수락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를 저성장과 양극화로 봤다. 특히 "경제력이 한쪽으로만 쏠리게 되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며 대기업의 투자 확대와 동반성장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도전과 교육 열정으로 많은 것을 이룩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은 것 같다"며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은 청년들이 꼭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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