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연말연시 인사가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 빠져 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예년 이맘때면 정기 인사의 시기나 폭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비자금 정국 등이 장기화되면서 상층부 인사 조차 도저히 점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검찰 수사의 칼날이 각 그룹의 상층부를 직접 겨냥해 들어올 경우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인사 폭이 의외로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하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일단 예년과 마찬가지로 내년 1월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순차적으로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는 “다음주부터 그룹 차원의 인사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면서도 “변수가 많아 아직은 (인사의 폭 등에 대해)뭐라 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달 초까지도 삼성 내부에서는 사장단의 경우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대부분 계열사들이 경영 목표를 달성한 점을 감안, 1~2명의 경질성 교체를 제외하고 상당폭의 승진 인사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삼성전기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안개국면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LG그룹은 메가톤급 폭풍이 연이어 불어 닥치면서 인사의 시기조차 확정 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계열사별로 12월말과 1월초에 걸쳐 인사가 이뤄졌으나 올해는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며 인사 시점이 상당기간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인사 폭과 관련해서도 “도저히 예측 못한다”며 “현안들이 마무리된 후에야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SK그룹도 지난해 11월 “오는 2005년까지 기존 경영진이 책임 경영을 다한 뒤 결과를 묻겠다”고 한 `제주선언`이 유효하기는 하지만, 손길승 회장의 거취에 따라서는 상층부 인사가 회오리가 불어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룹 인사가 검찰 수사 결과에 맡겨진 셈이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 8월 수뇌부 인사를 단행, 상층부에서는 큰 폭의 인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하지만 “최고 상층부의 경우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급, 인사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예단하기 힘든 실정이다.
코오롱이 전격적으로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는 등 조기 인사를 단행한데서 볼 수 있듯, 중견 그룹 인사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총수가 소환된 금호그룹은 12월말 인사가 예정돼 있지만, 전혀 윤곽을 잡지 못하고 있으며 한진ㆍ한화ㆍ두산 등도 수사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