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민원에도 품격이 있다

“민원실 맞죠. 제가 신경질이 나서 도저히, 아이씨….” 나른한 점심시간 따발총도 울고 갈 목소리로 고요함을 가르는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00다방 미스 리? 아니다. 나를 울리는 민원인이다. 다짜고짜 화풀이하듯 내 귓가를 수놓는 그녀의 아름다운 수다(?)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천천히’뿐.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민원인 대부분이 이렇듯 자신이 입은 피해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정중한 예의를 사양한다. 여유가 없다. 민원이 넘쳐나는 시대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민원 중에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제도의 불합리함을 개선하려는 공익 민원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민원까지 그 내용과 대상이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친 감정이 앞서는 말이나 글로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물론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기도 안 찼으면 그럴까도 싶다. 하지만 극심한 감정 분출은 오히려 민원의 진위를 왜곡시킨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볼 수 있는 문화가 민원이다. 그러한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진 곳이 우리나라다. 대한민국에 민원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이 어디 있을까. 그만큼 민원인의 요구가 충분히 먹혀드는 정서가 구축돼 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신사적인 절차를 밟아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가장 무서운 민원인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깍듯한 민원은 오히려 민원 상담자를 부담스럽게 한다. 빈틈없는 민원처리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민원인은 침착해야 한다. 또박또박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냉정한 한 사람이 분에 들떠 날뛰는 열 사람을 이기는 법이니까. 민원은 매력적이다. 협상 테이블로 상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관이 개인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지 않는가. 그래서 감히 주장한다. 욕설과 감정이 섞인 민원은 그만두자고. 민원에도 에티켓이 있고 품격이 있다고. 민원의 대부분은 업무처리의 실수가 발단이지만, 사람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일이 커지곤 한다.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굴곡 많은 민원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과 문제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