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명분 잃은 반가사유상 미국행

결국 반가사유상이 미국에 가게 됐다. 전시가 열리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하 메트뮤지엄)은 연간 600만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세계 3대 박물관인데다 이번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10월29일~2014년 2월23일)은 접근성 좋은 1층에서 진행된다. 전시기간이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 연휴에 이르는 연말 홀리데이 시즌과 겹치고 새해 연휴까지 포함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행 결정이 내려진 일단의 과정을 살펴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지난 2월 문화재위원회는 국외로 반출되는 국보ㆍ보물급 문화재가 너무 많다며 보류 판정을 내렸지만 4월께 입장을 바꿔 서류보완 등 조건부로 반출을 허용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반가사유상 반출을 반대하며 상황이 뒤집혔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경우 그간 8회에 걸쳐 약 3,000일간 국외 전시를 위해 반출된 바 있고 문화재의 보존관리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문화재청은 기마 인물형 토기와 토우장식 장경호를 포함한 국보 3건을 이번 반출에서 제외했다. 메트뮤지엄과 전시협약을 체결한 중앙박물관은 문화재청 설득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나서 반출 허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하지만 문제는 명분이고 모양새다. '문화재 보존ㆍ관리'라는 명분을 지키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한데 중앙박물관이 "포장ㆍ운송 과정에서 전시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공문을 받은 게 전부다. 그렇다면 모양새는 어떠한가. 이번 신라 특별전은 메트뮤지엄이 올 하반기 마련한 15회 전시회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메트뮤지엄의 연례 기획전 중 하나로 편성된 전시회에 국보를, 반대 여론까지 묵살하면서 보낼 이유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미국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해줘야 한다'는 무의식이 결국 이번 논란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문화재 보존도,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칙과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반년 사이에 같은 사안을 놓고 청장은 안 된다 하고 장관은 이를 뒤집는 모양새가 온당했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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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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