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계열금융 의결권 제한 득실

이종욱 <부산여대 경제학부 교수>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입법을 추진할 권한을 가진 정부나 국회는 그 법의 개정으로 발생되는 득과 실을 시간을 갖고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것은 입법 권한을 가진 정부와 국회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이번에 입법 발의된 공정거래법 제11조 개정안은 문제가 많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 금융보험사를 통한 대기업의 지배력 확장 방지라는 목적으로 의결권 행사 한도 30%를 단계적으로 15%로 축소하는 개정안을 이번 정기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함께 추진하는 이 개정안에 대해 대기업은 금융계열사가 보유 중인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일부 허용해주는 지난 2002년에 개정된 공정거래법 제11조의 존속을 희망하고 있다. 2002년 제11조의 개정에서도 정부와 대기업의 의견은 달랐지만 정부는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과 관련된 사항에 한해 의결권 행사를 허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정부와 시민단체의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대기업의 금융계열사가 고객의 돈으로 구입한 계열 기업에 대한 주식의 의결권을 15%만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경제 여건의 다양한 측면을 무시한 것으로서 대기업구조를 반대하는 국민정서에는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 서구식 시장경제 및 지배구조 논리만 강조되었을 뿐 이들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간 시장 및 제도 발달단계의 차이, 역차별, 국부유출 등에 대한 논의가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국내 우량기업의 주식지분을 높인 외국계 펀드들의 경영간섭은 국제적 상식과 관례를 뛰어넘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한 바 없다. 기업들이 국제금융시장을 돌며 적극적인 기업설명회(IR)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식지분이 높은 외국계 펀드들은 한국까지 와서 투자한 기업의 경영진을 호텔로 불러 기업설명을 요구한다. 때로는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관리자(CFO) 등을 자기 이사회에 출석시켜 사업을 설명하도록 하고 주식가치의 증대를 위해 본사를 뉴욕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타이거 펀드가 SK텔레콤을 매집해 거액의 이익을 챙겨가고 최근 소버린이 에너지와 통신을 거느린 SK(주)에 대한 주식매집으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도 정부는 수수방관하지 않았는가. 반면 외국 펀드들은 대기업에 대해 적대적 M&A와 유사한 사태를 일으킬 때마다 사전에 시민단체를 찾아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화, 홍보작업이자 로비인 것이다. 외국계 펀드들이 M&A와 비슷한 사태를 일으켜 거액을 챙겨가도 시민단체는 이들이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외국 펀드의 우군이다. 국회에서 법 개정으로 돈 한푼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거액을 지불하고 외세의 힘을 빌려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보면 국부유출을 경계하고 국익을 극대로 해야 할 국가경영을 누가 책임지고 있는지 정말 우려된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적대적 M&A와 유사한 사태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그 타깃은 항상 경영권 방어상 지분이 낮으면서도 큰 이익이 날 수 있는 대기업이다. 그러나 이번 제11조 개정안은 결국 그런 사태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셈인데 그것을 보면 정부가 외국계 펀드들의 과거 및 현재 투자행태에서 과연 무엇을 배웠는지, 국민이나 기업은 국가와 정부를 믿고 따라야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미국의 경우 외국 기업이나 펀드가 국가기반산업인 통신ㆍ전기ㆍ에너지 등에 대한 M&A를 시도한다면 국가경제의 안정과 보호를 위해 법률적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제약할 수 있다. 미국 상법은 신축적이므로 M&A에 대응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 기업들이 외국계 펀드나 기업에게 M&A 됐을 때 발생할 결과에 대한 준비가 없다. 외환위기로 인해 법률적 준비 없이 자본시장 개방화가 급격하게 추진되다 보니 현행 한국의 상법으로는 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상법을 개정한다 해도 외국계 지분이 높은 기업에서는 정관 변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준비 없는 개방으로 인해 적대적 M&A 방어를 위해 미국 수준의 절차적 정비를 갖추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한국의 대기업 구조가 갖는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최선의 방법이다. 대기업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개정하기보다 현행대로 유지하고 시간을 두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현재 우리 경제에 가장 유리한 선택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