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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이례적인 이벤트가 열렸다. 정부 부처끼리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 것. MOU하면 기업 간이나 부처와 업체 간, 지자체 및 중앙정부 간 투자유치나 기술협력, 업무협조 등을 위해 맺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날 MOU 당사자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행사에는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이경재 방통위원장을 비롯해 두 부처 공무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MOU 주요 내용은 이렇다. ▲고위급 간담회 정례 개최 ▲정책협의회 및 분야별 실무협의체 구성 ▲정보통신의 날 등 각종 행사 공동 주관 ▲인사교류 등이다.
정부 부처 간 MOU 체결 사례는 이전에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난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교환한 MOU는 '에너지 절약형 학교 만들기'라는 새 사업 추진을 위해서였다. 교과부ㆍ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ㆍ보건복지부ㆍ여성가족부가 맺은 협약도 '효율적인 방과 후 돌봄 사업'을 잘 추진하자는 내용이었다. 법무부와 교과부가 손잡은 '다문화 가정 자녀 공교육 진입 지원 사업'MOU도 마찬가지다. 모두 새로운 사업을 잘 해보자는 부처 간 공동 노력 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이다. 방통위와 미래부도 좋은 의도를 가진 의지의 표현이니 박수를 치고 싶지만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겉보기엔 그럴 듯한데 속내를 들여다 보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부딪칠 일이 많을 텐데 싸우지 말고 해결하자' '영역 다툼도 있을 수 있으니 협의하자'는 속사정이 읽힌다.
MOU 체결에도 영역다툼 우려 커
두 부처가 찾기 힘든 장면을 연출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부조직개편에 닿는다. 새 정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 업무를 담당할 미래부가 새로 출범하면서 사단이 생겼다. 지루하게 진행된 여야의 정부조직법 협상이 나눠먹기식으로 끝나 미래부와 방통위의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업계에서 통합 관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주파수 정책이 좋은 예다. 방송용과 통신용 주파수 정책을 담당할 부처를 쪼갬에 따라 나중에 관할권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많아졌다. 인터넷 개인정보보호, 휴대폰 보조금 정책 등도 비슷하다. 벌써 휴대폰 보조금 정책에 대한 경고가 두 부처에서 쏟아지고 있어 '이중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따른 700㎒ 주파수 활용과 관련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들린다.
미래부와 방통위의 이번 MOU에는 실무진 정책협의회 신설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담겨 있어 정책 협의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보기술(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두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자기 부처에서 주도할 업무를 먼저 챙겨 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들렸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경계가 불분명한 업무를 선점해 자기 부처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만큼 이번 협약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얼마나 정책 조율을 하기가 힘들면 협약까지 맺었을까 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많은 게 사실이다.
칸막이 없애 정책혼선 해소 힘쓰길
두 부처 입장에선 실천도 하기 전에 미리 안 좋은 방향으로 예단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손을 잡는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연된 부처 간 알력으로 정책 혼선을 빚었던 일이 비일비재했던 탓에 국민들이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것이다. 방통위와 미래부 간 영역 다툼, 밥그릇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주파수 정책이 혼란스러우면 주파수를 쓰는 통신ㆍ방송사만 애를 먹고 보조금 규제가 갈팡질팡하면 업체와 가입자들만 골탕을 먹는다.
MOU 자리에서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한 "미래부와 방통위는 한 가족으로 오랫동안 일해 온 만큼 서로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부처 간 칸막이 제거와 협업 체제의 모범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말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