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집단소송 스트레스가 가슴을 꾹 누르는 기분입니다. 2006 회계년도에 대한 감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 회계법인에서 깐깐하리 만큼 자료를 요구하고 있어요. 다들 몸을 사리는 거죠.” (반도체재료업체 E사 관계자)
“지난 해 3ㆍ4분기까지 수십억 원의 흑자를 냈다고 공시했던 회사가 올 2월 말 ‘2006 회계년도에 1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냈다’고 공시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명백한 분식회계 아닌가요?” (개미투자자 김모씨)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자진신고기한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중소ㆍ벤처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달 말까지 분식회계를 자진신고하면 금융감독당국의 감리는 물론 형사상 책임을 면제받지만, 민사상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 데다 이미지 실추는 물론 자칫 회사의 명운까지 위태로워지는 탓이다.
특히 올해부터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되는 집단소송제도도 이런 기업의 고민을 더하게 하는 요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종의 관행으로 치부됐던 회계법인의 ‘눈감아주기 감사’도 사라져 회계법인과 기업간 마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 해 하반기 상장한 한 IT업체 관계자는 “회계법인에서 비용처리를 너무 보수적으로 하다 보니 불만이 적잖다”며 “회계사들도 감사대상 업체가 소송에 직면할 경우 민사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지난해 말까지 분식회계를 고백한 상장기업을 8개사 가운데 1개 꼴인 200개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공정공시 등을 통해 분식회계를 신고하는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재무제표가 갑자기 크게 바뀐 경우 과거 분식회계를 시정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를 분식회계 신고로 간주하고 있다. 200개라는 수치도 바로 이런 기업들을 합산한 것이다.
감독당국은 중소업체의 경우 내부통제시스템이 미비하고 오너들이 분식회계에 직접적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이 커 분식회계를 끝까지 덮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만큼 향후 파장도 클 수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006 사업년도에 대한 회계감사가 막바지에 이른 만큼 소명기회는 이제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3월 말까지 나올 사업보고서에 재무제표가 과거와 큰 차이가 나면 분식을 털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올해 주총에서 투자자들이 재무제표의 이상 변화를 문제삼아 분식회계 혐의를 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업체의 경우 자진신고했더라도 일정 부분 홍역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