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월 19일] '한국판 교세라'를 기다리며

요즘 일본 재계와 언론에서는 전자부품 업체인 교세라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단연 화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이나모리 회장은 최근 방만한 경영으로 파산위기에 몰린 일본항공(JAL)의 구원투수로 깜짝 등장해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올해 77세의 그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간청을 받아들여 JAL을 살리겠다고 나선 것도 뜻밖이지만 벤처기업 사장 출신이 일본 간판기업의 회생작업을 진두지휘한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벤처기업서 日 간판 기업 성장 이나모리 회장은 지난 1959년 교토에서 직원 8명의 작은 벤처기업에서 출발해 탁월한 경영철학과 독창적 기술력을 앞세워 매출 11조엔의 글로벌 전자부품 회사를 일궈냈다. 맨주먹으로 창업해 세라믹 부품 하나로 출발한 교세라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성공적인 인수합병(M&A)으로 이제 일본의 간판기업으로 급성장했다. 교세라나 이나모리 회장의 명성은 한국에서도 남다르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을 만나 보면 자신의 회사를 교세라처럼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이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전자부품 업체를 경영하는 분들은 거의 빠짐없이 이나모리 회장을 롤모델로 삼을 정도다. 그의 드라마틱한 성장과정이나 경영이론이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듯하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장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지금의 한국적 기업풍토에서는 교세라 같은 기업이 쉽게 탄생하기 힘들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져 안타까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평적 분업관계'로 상징되는 교세라의 경영방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발붙일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상생의 문화가 자리잡았고 대기업ㆍ중소기업도 한배를 탔다는 공동체의식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지난해 일본의 한 대기업과 처음으로 거래를 텄다는 한 전자부품 업체의 사장은 일본 기업에서는 우리와 달리 일방적인 강요가 거의 없을뿐더러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사례가 많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거래해온 국내 대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얘기다. 사실 대부분의 국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한두곳과 수직계열화를 맺은 상태에서 기업을 꾸려가기 때문에 단순한 하청공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기업에서 어느날 물량을 줄이거나 거래관계를 아예 끊어버리면 회사가 순식간에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수도권의 한 자동차부품 업체 사장은 지난 연말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 실적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지난해 몇 년간의 적자에서 벗어나 실적이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외부에 알려져 행여 대기업의 심기라도 건드릴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해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지만 정작 협력업체들은 갈수록 깐깐해지는 수익관리에 배겨날 재간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매달 어김없이 원가계산서를 요구하고 3~5%의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기업내부 감사까지 자처하고 나서 원가구조를 샅샅이 파헤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 부품사들마저 이 같은 잘못된 관행에 익숙해져 있다는 소리가 나올까 싶다. 대기업·中企 상생 틀 마련해야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일방통행식 거래관행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적인 개선책을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제는 과거처럼 상생노력이 구두선으로 그치지 않도록 무엇보다 확실한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올바른 거래관행을 규정짓는 모범준칙을 만들고 쉽게 입을 열기 힘든 중소기업의 형편을 감안해 정부기관에서 앞장서 총대를 메야 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만 일본처럼 특화된 기술력으로 무장한 벤처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다시 대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우리 사회의 기업가정신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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