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괭이부리말은 우리 가족에겐 정류장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예전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과연 삶의 그릇이라는 도시에서 어떤 동네는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정류장이 되고 어떤 마을은 가고 싶어 동경하는 목적지가 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인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말은 대표적인 구도심 낙후지역으로 아직도 집안에 화장실이 없는 집이 많아 아침마다 공동화장실에 줄을 서야 하고 어른이 한 팔만 쭉 펴도 너비를 잴 수 있는 좁은 실핏줄 같은 길이 얽혀 있다. 도로변에 있는 집들은 그나마 햇볕이 들고 봐줄만하지만 깊숙한 속살에는 흉가처럼 방치된 낡은 집들이 어깨를 부딪치면서 다닥다닥 붙어서 있다.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에 내려 인천대교를 지나며 보이는 찬란한 마천루들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나는 인천이지만 같은 도시 안에 마치 5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착각이 드는 마을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괭이부리말이다. 재개발의 구호를 담은 플래카드 하나 없는 이곳에 인천시 당국이 최근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원래 살던 주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북아의 심장, 경제수도 인천 건설을 목표로 송도, 청라, 영종 등 개발의 중심이었던 신도시와 그동안 소외됐던 구도심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인천시가 나서 애쓰고 있다. 괭이부리말 사람들의 생활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재정지원이 불가피 할 텐데, 가뜩이나 어려운 인천시의 재정상황에서 어렵지만 꼭 필요한 사업을 위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영세민들의 서글픈 현실까지 말하지 않아도 한 도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도시민들이 건강히 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 신시가지 개발로 도시발전의 동력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어둡고 좁은 골목길에 게딱지 같은 집들이 늘어선 소외 지역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빠질 수 없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천도시개발공사도 지난 2003년 설립된 이후 주로 신도시 개발에 주력한 데 반해 구도심에는 연희동 임대주택 건설, 도화지구 재개발 사업 등 소수의 사업만을 시행해오고 있다. 그나마 워낙 규모가 작거나 추진속도가 더뎌 신도시처럼 금세 성과를 맺지 못한 채 부채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도화지구 개발 사업은 속도를 내고 있고 괭이부리말에서 멀지 않은 옛 대건학교 자리 옆에 만석동 현장도 얼마 전 착공해 구도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곳도 밤길 걷기가 무서웠던 동네로 십수년 전부터 개발을 하려다가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중단돼 있던 터에 안전한 삶의 자리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곳이 과거 괭이부리말처럼 정류장이 아니라 목적지가 되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3년 후 오는 2014년이 되면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게 된다. 이때쯤이면 사업이 완공돼 밝고 씩씩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광경을 떠올리니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