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국회 권위를 무시했다니…

“지금 국회의 권위를 무시하자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는 국감 못해요.” 국정감사 종료를 하루 앞둔 31일 경기 성남시의 한국토지공사 본사.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토공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의원들의 고성이 터져 나오며 이내 정회가 선포됐다. 토공이 이날 아침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 설명자료가 문제였다. 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은 ‘이해를 구하는 해명자료 모음’이라는 제목의 10쪽짜리 자료를 들어보이며 “피감 기관이 어떻게 이런 짓을…”이라고 흥분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윤두환 의원 역시 “자료 작성자를 문책하지 않으면 국감을 못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료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땅장사’ ‘폭리’ 등 토공을 둘러싼 주요 의혹에 대해 토공 홍보실장 명의로 해명을 담은 것. 자료에 실린 의혹들도 하나같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고, 그에 대한 해명 역시 토공이 그때그때 배포했던 자료들을 요약 정리한 정도였다. 국감이 진행되는 하루 동안 십수명의 국회의원들이 쏟아내는 갖가지 의혹과 문제점을 일일이 따라가기가 벅찬 취재기자의 입장에서는 뻔한 내용이나마 토공의 입장을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로 평가됐다. 그런 점에서 일부 의원들의 갑작스러운 시비와 그에 따른 국감 파행(?)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피감 기관의 전횡과 비리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생산적인 국감의 이면에는 한건 터뜨리기식의 무책임한 폭로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도 난무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피감 기관이라고 아무런 방어 없이 국회의 샌드백이 되라는 법도 없다. 하물며 이미 배포됐던 해명자료를 모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놓은 자료 따위가 국회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꾸지람은 피감 기관에 대한 ‘군기 잡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애써 준비한 국감을 무력화하기 위한 치밀한 공작쯤으로 오인하는 것은 아닌지, 언론이 국회의원이든 토공이든 자료만 내면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만을 앞세워 오히려 언론과 국민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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