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적 증오를 유발시키는 데는 민주주의가 주범이라고?”
예일대 법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Amy Chua)가 쓴 `불타는 세계`(World on Fireㆍ더블데이 출간)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전세계적인 무차별적인 살포가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인종적 증오를 구조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최근 유행어가 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게 경제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하고 있으며 제3세계의 어설픈 민주주의와 결합되어 가난한 나라들에서 인종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아내고 있다.
에이미 추아는 세계은행에서 수년간 일했으며, 월스트리트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았다. 멕시코에서는 국영통신회사의 민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40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부에서 숱한 체험을 한 저자의 이력을 보면 `자유시장체제`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오히려 위험스런 경제적 장치라는 주장이 무척 이색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그녀가 매우 신중하게 자료를 모았으며, 일정 기간의 고뇌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우선 개인적인 경험부터 말하기 시작한다.
1994년 저자의 숙모 레오나는 필리핀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사업가였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의 운전사에게 살해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목격자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살인범은 기소되지 않았다. 현지경찰은 정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불행히도 다음과 같은 수치만이 비극적인 살인사건의 배경으로 되고 있을 뿐이었다. 즉 필리핀 인구의 1%밖에 안되는 화교들이 필리핀 국부의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또 8,000만 필리핀인들의 3분의 2가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
소수의 특권층이 절대적인 부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개발도상국가들에게 시장경제를 강요하고, 여기에다 어설픈 민주주의 체제가 결합되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이다. 필리핀에서는 사실 마르코스 독재체제가 붕괴된 이후 인종적 증오로 인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인도네시아에서는 1998년 수하르토의 독재체제가 끝나자 자카르타 한 곳에서만 5,000여 개에 달하는 화교들의 상점이 불타는 일도 있었다. 이와 유사한 일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동부 아프리카의 인도계 주민들, 러시아의 유태인들, 짐바브웨의 백인들이 대표적인 `민주주의의 희생자(?)`들이다. 자유선거 제도가 도입되면서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선동정치가 그들 나라를 지배하면서 정치적 희생양을 계속 찾아내고 있다는 것.
9ㆍ11 테러 때 미국인들은 많은 제3세계 사람들이 오히려 환호성을 지른 사실에 큰 성처를 입었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경제의 소수 지배자`로 남아있는 이상은 그 같은 증오의 유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세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빈곤층들은 9ㆍ11 테러를 없는자들의 `복수`로 해석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저자는 `정치적 민주체제` 못지않게 중요한 대목은 `경제적 민주체제`라고 말한다.
개발도상국가에서 `세계화`라는 충격을 완화시키려면 합리적인 조세정책, 중소기업 육성, 주식소유의 분산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조절`이라는 것. 미국이 하루아침에 시장경제 국가로 탄생한 것이 아니듯이 다른 나라 역시 윽박지른다고 곧바로 세계화의 세례를 받을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