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김모(58)씨는 최근 한 코스닥시장 상장업체의 주식 6만여주를 매도했다. 이 업체의 대표이사와 친분이 있는 김씨가 투자목적으로 갖고 있던 54만여주(45억원) 가운데 일부다. 지난 7월 정부가 대주주의 기준을 확대한 후 김씨는 적당한 주식 처분 시기만 봐왔다. 이 업체의 주식을 연말까지 시가기준 40억원을 초과해 보유하고 있을 경우 김씨는 대주주로 인정돼 앞으로 매도할 때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7월 대주주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슈퍼리치들이 분주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슈퍼리치들은 변경된 금액 기준으로 대주주의 지위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보유주식 처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주주의 기준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세법 시행령은 7월부터 시행됐다. 다만 12월 결산법인 투자자 가운데 새로 대주주에 포함된 사람은 연말까지 지분을 정리하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시행령이 바뀌기 전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업체 1곳의 지분을 3% 이상 혹은 시가 100억원을 초과해 보유할 경우 대주주로 인정됐다. 코스닥시장의 경우 상장업체 1곳의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거나 시가 50억원 이상 보유할 경우 대주주가 됐다.
시행령이 개정된 뒤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업체 1곳의 지분을 2% 이상 혹은 시가 50억원을 초과해 보유할 경우 대주주로 인정된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상장업체 1곳의 지분을 4% 이상 갖고 있거나 시가 40억원 이상 보유할 경우 대주주가 된다.
서혜민 미래에셋증권 WM비즈니스팀 세무사는 "삼성전자 등 시가총액이 큰 종목을 보유하거나 특정 코스닥기업에 집중투자한 사람들이 상당수 대주주에 새로 편입된다"며 "대주주 지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당 종목을 매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기지 않지만 대주주가 되면 해당 주식을 팔 때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슈퍼리치들은 이에 따라 대주주 요건을 해소하기 위해 주식을 대량 처분하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 대주주에 포함된 일부 슈퍼리치는 이달까지 주식을 처분한 뒤 연초에 다시 매입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지분율 기준 대주주는 바로 공시해야 하지만 금액 기준 대주주는 매년 사업연도 말에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경민 KDB대우증권 PB클래스 갤러리아 이사는 "슈퍼리치들은 대주주 요건 해소가 시급한 만큼 대주주 지위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까지 주식을 적극 매각하고 있다"며 "내년 초 동일한 주식을 재매입하려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진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 상무는 "연말 증시가 불안한데다 대주주 이슈 등이 발생하면서 슈퍼리치들의 현금보유율이 높아졌다"며 "연초 증시의 분위기를 보고 새로 투자방향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