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中企현장] 고용 위해 제품 파는 '사회적기업'

4년새 10배 늘었지만… 정책 남발로 '삐걱' <BR>정부·지자체 업무등 중복·혼선… 전시행정 우려속 기반마저 위태<BR>"부처 초월 별도 조율기관 세워 민간 주도형 사회적 금융 필요"


#사례1. 지난 2006년 설립된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친환경 웨딩드레스 및 유니폼을 제작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올해 서른 두 살인 이경재 대표를 비롯해 20대 장기구직자, 40대 경력 단절 주부 등 직원들의 이력과 연령대도 다양하다. 화학섬유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웨딩드레스 제작 업체로 출발했던 이 회사는 이제 친환경 유니폼이나 유아용품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청 직원들 유니폼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 공공시장에도 진출했다. 또 회사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저소득층이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무료 결혼식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 대표는 "단순히 의류회사를 넘어 함께하는 문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례2. 경기도 용인에 사업장을 둔 에이피홈은 장식용 시계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이 회사는 유럽 및 호주 등에서 고급 자재를 공수해올 정도로 제품 차별화에 공을 들이며 국내외에서 품질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 롯데백화점과 입점을 논의 중이며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오는 9월부터 제품이 판매된다.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일본, 중국, 대만, 호주, 말레이시아 등에 이미 제품을 수출했거나 곧 납품할 예정이다. 이처럼 글로벌 강소기업을 꿈꾸는 에이피홈의 구성원은 장애인과 동남아 이주여성, 새터민 등이다. 박혜경 대표는 "직원들 모두 우리 사회에서는 소외계층으로 분류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제품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사회적기업들이 전세계 기업 문화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이들 사회적기업들은 흔히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으로 일컫는다. 즉 수익창출을 위한 영업활동을 전개하면서도 이윤의 대부분을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의 특징이다. 특히 사회적기업은 정부나 기존 사기업들이 커버할 수 없는 공공부문 서비스나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등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 정부 주도 하에 사회적기업 육성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각 정부 부처나 기관별로 관련 정책을 남발하면서 업체들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또 과도한 실적 쌓기식 지원정책은 '전시행정'이라는 우려를 낳으며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국내 사회적기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사회적기업 숫자는 지난 2007년 55곳에서 올해 5월말 기준 532곳으로 10배 가량 늘어났다. 이러한 급증세에는 정부가 지난 2007년부터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시행,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 인증 및 지원제도가 본격화된 것이 배경이다. 특히 정부는 2012년까지 사회적기업 1,000곳을 창출해 국내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각 정부부처나 기관에서도 사회적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형국이다. 실제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올초 출범해 관련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중소기업청은 지난해부터 사회적기업을 위한 자금지원과 경영컨설팅 등의 멘토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 역시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지난해부터 사회적기업에 대한 융자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지자체 중에서는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서울형 사회적기업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처럼 각 기관별로 사회적기업 지원책이 난립하면서 업무 중복과 혼선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울형 사회적기업 지정 사업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각 지자체와 연계해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각 지자체 발급)과 사회적기업 인증(고용노동부 발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획득한 기업은 최대 3년간 인건비 지원과 사업개발비 지급, 세제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고용노동부 정책과 별도로 독자적인 사회적기업 브랜드를 육성하겠다는 의도다. 서울시는 지난 6월말 기준 337곳인 서울형 사회적기업 숫자를 내년까지 1,000곳으로 확대, 모두 2만8,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치적 쌓기식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서울형 사회적기업 지정사업은 사회적기업육성법에서 명시한 사회적기업 인증 조건보다 문턱을 크게 낮춰 지정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반해 중기청은 관련 지원 제도를 마련해놓고도 사실상 '개점 휴업' 중이다. 중기청은 사회적기업을 위한 지원 자금을 지난해(50억원) 신설, 올해 1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상태다. 하지만 7월 현재까지 단 3개 업체에 5억원이 지원된 게 전부다. 이처럼 저조한 지원실적의 원인은 중기청에서 기존에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창업 및 경영자금을 지원해주는 소상공인지원자금과 사회적기업지원자금의 성격이나 지원 대상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기청의 한 관계자는 "사회적기업과 관련한 지원책은 아직 시행 초기라 명확한 지원 기준 등이 정립되지 않아 혼선을 겪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기청은 지난 7월초 중소기업법까지 뜯어고쳐 '비영리 목적의 사회적기업'을 중소기업에 편입시켰다. 지원 대상을 확대해 어떻게든 연내에 관련 정책자금을 모두 소진하려는 복안이다. 이미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 자립, 공공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 각 부처에서 시행됐던 정책들과 중복되는 것도 문제다. 현재 보건복지부(자활공동체)와 통일부(새터민 정착사업), 농림수산식품부(농어촌공동체회사), 행정안전부(마을기업)가 각각 사회적기업과 유사한 성격의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는 해당 사업 참여기업들을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편입해 사회적기업 지원사업과 일원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사회적기업 정책과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영국의 '제3 섹터청(OTS)'처럼 부처를 초월한 별도의 조율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사회적기업 정책을 다루기 위한 범정부기구로 지난 2008년부터 제3 섹터청을 운영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사회적기업 정책을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다 보니 일자리 창출 쪽에만 무게 중심이 쏠리는 문제가 있다"며 "사회적기업은 일자리뿐 아니라 환경, 건설, 복지 등 다양한 이슈가 망라되는 만큼 특정 부처에서 주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직접 육성하는 국가는 영국과 한국밖에 없다"며 "정부과 정책을 주도할 경우 임기 내에 실적 쌓기나 전시행정 등 관료주의로 정책이 왜곡될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비영리단체인 사회연대은행은 10억원 가량의 자금을 펀딩해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ing)'의 시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적 금융은 민간이 주도해 사회적기업에 대한 투자 및 융자를 지원해주고 더 나아가 경영 전반에 대한 컨설팅 등을 연계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대표는 "기존의 정부 지원책은 공적부조 형태를 띠거나 단기 대출 방식으로 지원기간이 일시적일 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한계가 있다"며 "민간 주도로 사회적 금융이 활성화되면 정부의 재정 부담 감소는 물론 다양한 영역의 사회적기업을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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