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7월 17일] 泣斬馬謖, 健在萬洙

‘시늉뿐인 개각’ ‘이런 개각으로 국민의 마음 사겠나’ ‘좌고우면 현실미봉 보신(保身)정부로 연명이나 할 건가’ ‘이명박 정부에선 장관 책임을 차관이 지나’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개각’ ‘신뢰 무너진 경제팀으로 난국 못 푼다’. 지난 7일 개각에 대한 보수 내지 중도성향 신문들의 1면 기사와 사설 제목이다.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들이 이랬으니 비판적 매체들의 논조는 소개할 필요도 없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언론이 여론의 거울이라고 보면 국민들은 개각에 낙제점을 준 셈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팀, 특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유임이었다.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국정쇄신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고소영’ 인사실패를 만회하고 무너진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신을 깊게 만들어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 아닌가 싶다. 악재투성이 경제는 어떻게 되고, 국정운영은 정상궤도에 들어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무겁다. 대통령은 쇠고기 촛불시위 와중에 국민에게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행렬을 보면서 깊이 자책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개각은 쇄신의 상징처럼 됐고 그 핵심은 경제팀 교체였다. 대통령은 한 달 이상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뼈저린 반성도 했고 긴 시간 숙고했으니 제대로 된 인사를 할 것으로 국민들은 믿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눈높이는커녕 무릎에도 못 미쳤다. 반성과 다짐의 진정성은 허공에 떴다. 경제가 어렵다고 그때마다 장관을 바꿀 수 없으며 제대로 일할 시간이 없었던 만큼 기회를 줘야 하고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위해서라는 게 정부가 밝힌 경제팀 유임 이유다. 공감하기 어렵다. 여당조차 교체를 주장하는 등 경질요구가 비등했던 것은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판단착오와 정책 실패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꼬이게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환율이다. 강 장관은 취임 초 환율주권론을 내세우며 환율상승을 유도했다.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 악화를 막고 성장을 견인하자는 것이었다. 물가불안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성장을 못해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물가상승이 낫다’고 강변했다. 환율은 날개를 달았고, 안 그래도 고유가의 압박을 받던 물가는 치솟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장보다 물가라며 보유외환을 풀어서라도 환율을 끌어내리겠다고 돌아섰다. 이게 불과 5개월 새 일어난 일이다. 그 와중에 하루 환율 변동폭이 무려 3%에 이르는 후진국에서도 좀체 볼 수 없는 극심한 혼란장세까지 나타났다. 대외 환경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정부 해명이지만 그토록 단기간 내 정책이 극과 극을 오락가락하며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운 것은 경제팀의 상황판단과 대응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책의 일관성ㆍ안정성은 더욱 말이 안 된다. 그 결과는 신뢰 상실이다. 강 장관은 자리를 지켰지만 차관이 문책당함으로써 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공은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잘못의 책임은 윗사람이 지는 게 우리네 정서다. 그런데 본의든 아니든 부하의 희생을 딛고 살아난 모양새가 됐다. 정책 오류의 패장에 이제는 졸장(拙將)의 불명예까지 덮어쓴 셈이다. 야당은 인책공세를 벼르고 있고 여당에서도 ‘혼날 준비를 하라’고 미리 침을 놓았다. 온통 상처투성이가 될 판이니 그가 리더십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제갈공명은 군의 통솔을 위해 자식처럼 아끼던 장수 마속을 울면서 참수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건재만수(健在萬洙)’가 아닌 읍참마속이 대통령의 부담을 덜고 국민을 위하고, 강 장관도 사는 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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