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수사를 유보키로 결정했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비자금수사를 15대 대선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하면서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과거의 정치자금에 대해 정치권 대부분이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것,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 사건을 수사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정치적 파장과 국론분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경제가 또다시 기업의 비자금 수사 등으로 이어질 경우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검찰의 이번 결정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볼때 잘 한 일이다. 이같은 결단을 내리기까지에는 청와대 등과의 사전 교감설도 있다. 그러나 이를 떠나서 비자금수사 유보는 검찰이 나라형편, 국민생활을 먼저 의식했다는 점에서 검찰이 최근들어 보여준 일련의 경제 마인드 수사와 관련, 환영할만 하다. 또 벌써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여권의 강한 반발을 예측했으면서도 개의치 않은 것은 검찰의 중립성 강조로서 기대해 볼만한 대목이다.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은 일선검사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수사불가」에서 그 힘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시점에서의 수사는 형평성·공평성 등 측면에서 적절치 않으며 무엇보다 벼랑끝 경제가 회복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릴 우려가 크다는 것이 일선검사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라는 얘기다.
비자금 수사유보는 여느면 수사종결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비자금 자체를 용인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자금과 비자금은 그 성격이 구분돼야 한다. 정치자금은 공개된 장소에서 떳떳하게 주고 받는 투명한 돈이나 비자금은 밀실에서 넘겨질 때 꼬리표가 달려 있다. 비자금은 정경유착의 매개체며 그 폐해가 지금 우리경제를 옥죄고 있다.
정치가 더 이상 경제를 흔들어서는 안된다. 검찰도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판국이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고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는 제도보완이 선결과제다. 정치개혁법과 자금세탁방지법이 이번 국회 회기중에 꼭 통과돼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법안인데도 정치개혁법은 여야의 당리당략에 밀려 아직 법안 작성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며 정부입법인 자금세탁방지법도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정치는 정치논리로 해결해야 한다. 검찰이 이번 비자금 수사유보를 천명하면서 내세운 국론분열 우려는 국가공권력 개입의 한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여야는 이번 검찰의 결정을 곱씹어 정치개혁에 앞장 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