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민족최대의 명절인 설이 지났다. 예전에 비해 명절의 풍습이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올해도 역시 민족대이동이 있었고,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고 정담을 나누며 정겹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한자문화권 안에서 태음력을 기준으로 사는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설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대만에서 음력 정월 초하루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축제일로 설빔을 준비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가능한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명절분위기를 만끽한다.
「원보」라 불리는 경단과 전병을 먹고 설날 아침에는 건강과 무병장수의 의미가 담겨있는 술 「춘주」를 권하며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제등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친척과 친구에게는 「홍파이」라는 빨간봉투에 반드시 홀수로 돈을 넣어 세뱃돈을 주고, 이튿날 오전 1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있다.
또한 대문에 행복 번영 장수를 비는 춘련을 걸어놓는데, 춘련은 붉은종이에 송구영신 같은 좋은 의미의 글을 써 복숭아나무판에다 붙여놓는 것이다.
한편, 말레이지아는 인구구성이 매우 복잡해 민족마다 특색있는 풍습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슬람력의 신년인 하리라야가 고유의 명절이다. 하지만 역시 중국계에게 최대의 명절은 구정이다.
우리처럼 설날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은 없으며, 그저 해산물이나 닭, 오리고기 요리를 정성스럽게 장만해 먹는다. 거기다 행운과 장수를 뜻한다는 채소 파초이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웃에게는 복이 담겨 있는 금귤을 나눠준다. 세배는 우리처럼 연장자순으로 하는게 아니라 결혼한 순서대로 하는데, 세배하는 풍습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세뱃돈 주는 습관은 여전하다.
싱가포르 역시 중국계 말레이지아계 인도계 등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기에 일년내내 각종 축제가 끊이질 않는다. 중국계 가정은 구정이 가까워지면 대청소를 하고 빚이 있다면 모두 청산한다. 집안이 불결하거나 빚을 갚지 않은 채 새해를 맞이하면 악운이 닥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대만처럼 빨간봉투에 돈을 넣은 홍파이를 건네며 구정기간에 강 홍파오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불꽃놀이와 중국 민속에서 유래됐다는 물위에 떠있는 거대한 등불이 인상적이다.
99년 새해가 시작된지 벌써 2달째지만 중국계가 대부분인 아시아에서는 이제부터 기묘년 신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해의 계획이 조금 흐트러졌다면 지금 이 시간을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아보자. 【방송인·여행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