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귀족화' 노조집행부 불신깊다
"노조원 이익대변·회사발전 참여 미흡" "대화·타협 불가능" 의견도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던 2002년 6월 7일,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노조의 봉쇄로 회사의 임원과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들의 출입이 통제되기 시작했다. 차량이나 장비도 출입문을 지나갈 수 없었다. 노조가 전면파업에 들어간 지 보름만의 일이다.
6월 24일, 회사측이 해외에 수출해야 하는 담수플랜트 출하를 시도했으나 노조원들의 저지에 막혔다.
회사의 피해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폐업을 하더라도 불법파업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맞섰다.
회사측은 법원에 '물품 반출입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 노조의 실력행사에 대응했지만 사업장에는 노조의 '계엄령' 외에는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면파업 40여일이 지난 7월 4일. 지역중재단이 노사 양측을 설득하면서 노조원들은 작업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가 입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이로 인한 노조의 조직력 붕괴는 어느 누구도 보상해주지 못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 A사의 외국인 사장은 "만약 우리 회사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당장 한국 사업장을 철수할 것"이라며 "파업이 너무 쉽게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노조, 법 안지킨다
외국인이 한국의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선입견은 '과격한 파업과 공권력 투입을 통한 해결'이다. 대화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노사관계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외국인도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1.3%가 한국 노조가 다른 국가의 노조에 비해 강성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가 법과 단체협약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25.0%가 '잘 지키는 편이다'고 대답했으나 '그저 그렇다(56.3%)', '안 지킨다(18.7%)'등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스웨덴 일반노동자조합(LO) 옴부즈만으로 활동하는 토머스 프레덴씨는 "스웨덴의 경우 계약기간 동안 불법파업을 찾아볼 수 없다"며 "노조와 사용자 모두 법과 규칙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신 깊어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더욱 심각하다. 노조 집행부가 평소 조합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수렴하는 편이다'가 34.4%로 나타났지만, '그저 그렇다(50.0%)'와 '잘 수렴하지 않는다(15.6%)'가 더 많았다.
일부 노조 집행부가 '귀족화' 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5.6%가 '노조 집행부가 임금 인상에만 관심이 있고, 회사를 압박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의 한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가 노조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회사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노조간부들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생산성 향상 임금상승 못 미쳐
이번 조사에서는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이 근로환경이 개선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노조원들의 임금수준 등 근로조건이 5년전보다 개선되었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개선됐다(46.9%)'와 '조금 개선됐다(43.8%)'라는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노조원들의 생산성이 임금 상승에 비례해 개선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개선됐다'와 '조금 개선됐다'는 응답이 각각 6.5%, 34.4%인 반면 '그저 그런 수준(34.4%)', '개선되지 않았다(12.9%)', '매우 개선되지 않았다(9.7%)'등 부정적인 대답이 절반을 웃돌았다.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경영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22.7%로 가장 많았고, '기술ㆍ기능수준이 향상되지 못했다'와 '숙련된 근로자를 확보하지 못해 적절한 인력배치가 어렵다'가 각각 20.5%로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