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찰 문건에 나타난 '고려대 6·3 시위'

"우리는 종주국 없이 한번 살아보자. 이것이 우리의 피맺힌 절규다. 일제의 망령을 박멸할 때까지 우리는 영원한 투쟁의 대열에 참여할 것을 여기서 엄숙히 선언한다." 한일국교정상화담 정국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1964년 3월24일, 고려대 국제상경학회 회의실에서 이 학교 상대 학생회장 이명박이 읽은 선언문 마지막 구절이다. 이날 고려대 시위는 정경대 학생회장 박정훈과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촉구운동 '이념서클'인 '민정회' 소속 최장집과 김덕규, 응원단장 손옥백, 단과대 학생회장들인 이경우와 이명박 등에 의해 계획됐다. 이 때 교문을 나선 학생들은 안암동 로터리와 종로, 을지로 등지의 경찰 저지선을 뚫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해 결의문과 대정부 경고문을 낭독하고는 해산했다. 이 결의문과 경고문에는 "민족혼이 불멸하는 우리 항일본산의 후예들은 이제 한ㆍ일 굴욕 외교의 전적 책임을 정부에 묻는다"라고 하는가 하면 "한ㆍ일 굴욕회담만이 현 정부의 유일한 탈출로가 아님을 알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6일 만인 3월 30일, 박정희 대통령은 각 대학 학생회대표들을 불러 면담을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이는 꽤 주효했던 듯 사태는 진정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4월 1일, 국회에서 김종필ㆍ오히라 메모가 공개되고 같은 달 11일에는 학원사찰이 국회에서 문제화하면서 대학가는 다시 시위로 불이 붙었다. 고려대의 경우 4ㆍ19 4주기 기념일에 최장집 등의 주도로 시국선언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5월21일 새벽, 무장군인 13명이 법원에 난입해 '대일굴욕외교' 반대와 학원사찰 중지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영장을 발부토록 법원에 압력을 행사한사 건이 발생하자 이날 서울시내 32개 대학총학생회장 연합체인 '한일굴욕회담 반대학생총연합회'(한학련)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고려대의 경우 5월 25일을 기해 학생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난국타개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정오에 시작된 이 시위에서 정경대 학생회장 박정훈과 법대학생회장 이경우가 선언문과 기조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 상대학생회장 이명박이 난국타개 궐기대회 행동 강령을 낭독했다. 6일 뒤인 5월31일 저녁, 박정훈, 최장집, 김덕규, 김병길, 손옥백, 김광현, 김재하 등이 법대 학생회장실에 모여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박정희 하야를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같은 날 밤, 다른 단과대 학생회장이 동참한 가운데 김병길과 이명박의 제의에의해 '구국투쟁위원회'(구국투위)가 결성됐다. 위원장에는 법대 4학년 김재하가 선출됐으며, 단과대 학생회장들인 이경우(李炅祐.법대)ㆍ박정훈(朴正勳.정경대)ㆍ이명박(李明博.상대)이 부위원장에 뽑혔다. 최장집(崔章集.기획.정외과)과 김덕규(金德圭.선전.정외과)와 손옥백(孫玉白.응원단장)은 집행부원이 됐다. 이렇게 조직된 '구국투위'는 6월 2일, 교내 배구장으로 학생들을 모았다. 위원장인 김재하는 "우리는 박정희 정권을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타도할 것을 전 국민과 아울러 결의한다"는 선언문을 낭독했으며, 교외로 나아가 몇 차례 경찰 저지선을뚫고는 500여 명이 국회의사당에 집결해 박정희 하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고려대생은 206명이 연행돼 그 중 손옥백 등 10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피신한 다른 지휘부는 이튿날인 3일 오전 다시 교내로 집결해 시위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소 늦은 오전 9시 무렵, 산을 타고 넘어 교내로 진입한 이명박이 지휘부에 가세하고 오전 10시 무렵에는 시위대만 4천 명 가량을 헤아렸다. 다시 교외로 진출을 시도한 이들 중 일부는 오후 1시40분 무렵 국회의사당 앞을점거했으며 이후 이곳에는 다른 대학 학생과 일반시민을 합쳐 약 3만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운집했다. 그날 밤 박정희 대통령은 헬리콥터로 도착한 주한미국대사 사무엘 버거와 유엔군 사령관 하우즈를 만난 뒤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로부터 시작된 시위 주도자 검거 열풍에 6월15일에는 이경우와 이명박이 검거됨으로써 고려대 시위 지도부는 사실상 궤멸했다. 고려대박물관이 최근 입수해 일반 전시에 들어간 '고대 데모 사건 개요'라는 제목의 경찰 문건은 3월24일 봉기 이후 6월3일 국회의사당 앞 점거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숨가쁜 한 대학의 학생운동을 조직표 한 장으로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