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나라살림 노하우'도 韓流 바람

"한국 재정시스템 배우자" 러·필리핀 등 앞다퉈 방한<br>印尼·日은 벤치마킹 위해 수차례 다녀가<br>IBRD선 "가장 발전된 관리시스템" 격찬


외환위기의 파고가 한창이던 지난 1998년. 세계은행(IBRD)이 파견한 전문 컨설턴트가 우리 정부를 찾았다. 파산 위기에 놓인 한국에 선진국의 외채 관리시스템 등을 전수해주겠다는 IBRD 측 제안에 따른 방한이었다. 그로부터 14년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한국 정부에 '한 수 가르쳐주겠다'던 국제사회가 이제는 우리 정부로부터 나라 살림살이의 노하우를 앞다퉈 배워가고 있다. 민간ㆍ기업 부문에 이어 공공 부문에도 한류 바람이 부는 셈이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수석 차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사절단이 오는 9월 우리나라의 첨단 '통합재정정보시스템(별칭 디브레인ㆍdBrain)'을 배우러 방한한다. 우리나라의 재정시스템을 강대국이 공부하러 오기는 이번이 처음. 필리핀 정부 사절단 역시 조만간 우리나라 재정 노하우를 공부하러 온다. 이에 앞서 인도네시아 정부도 지난해부터 차관보 등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수차례 보내 디브레인을 연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이미 수년 전 디브레인의 전신인 일명 '나피스(NaFIS)'를 벤치마킹하러 여러 번 방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IBRD 측이 재정혁신을 꾀하는 각국 정부에 디브레인을 최우수 모범 사례로 추천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IBRD의 쳄 더너 수석전문위원은 디브레인에 대해 "가장 발전된 재정관리시스템" "(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고 독창적인 통합재정정보시스템"이라고 격찬한 것으로 전해졌다. 디브레인을 통해 처리되는 안건은 하루 평균 30만건. 하루 약 4조5,000억원(지난해 기준)의 나랏돈이 해당 전산망을 타고 인터넷뱅킹하듯 오간다. 이 시스템은 과거에 따로 나뉘었던 예산의 편성과 집행, 국유재산 관리를 실시간으로 통합처리한다. 아울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각 산하기관의 재정까지 마치 연결재무제표를 쓰듯 한 몸처럼 관리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처럼 국고를 실시간으로 통합관리하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는 게 정부의 설명. 그만큼 예산 낭비는 줄어든다. 예를 들어 각 중앙부처나 지자체ㆍ산하기관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앞으로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는 게 효과적인지 중장기계획도 정확히 세울 수 있다. 행정력 낭비도 줄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디브레인 도입 후 박카스를 들고 오는 내방객이 사라졌다"고 우스개 섞인 묘사를 했다. 국가 재정이 온라인디지털체계로 통합관리되기 전에는 중앙부처ㆍ지자체 공무원, 산하기관 관계자들이 예산을 청구해 타기까지 최장 15일이나 걸렸다. 물론 개선과제는 남았다. 매일 수십만건씩 디브레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데이터가 원재료라면 이를 가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정밀예측할 수 있는 정책자료로 만들어야 한다. 재정부도 이를 위해 관련 조직을 조만간 확대개편하고 인프라도 확충할 방침이다. 특히 디브레인을 통해 각 부처나 지자체ㆍ산하기관 등의 예산집행 성과를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평가하고 미래의 국가 살림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체계가 개발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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