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금융권, 출혈경쟁에 공멸위기"

尹금감위장 "한국금융시장엔 블루오션 없다"<br>특정 금융상품 히트치면 수개월내 모방상품 쏟아져…차별화뒷전 저가경쟁 혈안


먹거리가 풍부한 ‘푸른 바다(blue ocean)’에 물고기가 한마리 나타나면 곧이어 수많은 상어떼가 나타나 서로 잡아먹는 바람에 ‘붉은 바다(red ocean)’로 변해버린다. 이 현상이 바로 한국 금융권에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을 비롯, 금융감독당국의 고위당국자들이 연이어 한국 금융시장의 ‘붉은 바다론’을 제기하고 있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한국씨티은행 출범 이후 촉발된 이른바 ‘은행전쟁’이 금융권의 공멸을 초래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선제적 감독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붉은 바다론’은 프랑스의 르네 마보안 교수가 쓴 책 ‘블루오션 전략’에서 나오는 표현으로 과포화된 기성시장에 뛰어들면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논리다. 금융권이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들어가면서 금융권에는 ‘블루오션’의 논리가 약화되고 금융기관간 상품 차별화가 어려워 ‘레드오션’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금융권 전체의 수익성 악화로 연결되고 있다. 각 금융기관이 외형 경쟁을 벌이면서 사실상 ‘덤핑경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은 은행권.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이 비교적 리스크가 적은 주택담보대출에서 금리인하를 미끼로 판촉경쟁에 나섬에 따라 지난해 말 112조2,622억원이었던 대출잔액은 지난 3월 말 117조846억원으로 3개월새 4.2% 넘게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은 4년 사이에 배로 늘었다. 5개 시중은행(국민ㆍ우리ㆍ신한ㆍ조흥ㆍ하나은행)이 저금리 장기화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있는 정기예금의 대체상품으로 지난해부터 판매에 들어간 지수연계예금 판매액은 지난해 말 3조8,807억원에 이른 데 이어 올 4월 말 3조9,713억원에 달해 4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적립식 펀드의 5개 은행 판매액도 지난해 말 1조4,471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 4월 말에는 2조9,312억원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주요 상품에 대한 판매액이 증가했음에도 은행권의 수익구조는 지난해 말을 정점으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잠정 집계한 지난 1ㆍ4분기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조7,559억원으로 사상최고 수준에 달했지만 충당금적립전 이익은 4조6,24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160억원 감소했다. 실질적인 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1ㆍ4분기 2.94%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 1ㆍ4분기에는 2.62%까지 낮아졌다. 증권업계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 간접투자 열기가 고조되면서 투신사 펀드 설정액은 2003년 말 134조9,186억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189조237억원으로 무려 40.0% 이상 증가했다. 특히 파생상품 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6월 말 5,039억원에서 12월 말에는 4조7,267억원으로 늘어났고 부동산펀드 역시 지난해 6월 말 1,387억원에서 연말에는 8,609억원으로 증가했다. 상품판매 호조에도 불구하고 증권ㆍ자산운용사의 순이익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금감원이 집계한 국내 증권사의 2004회계연도 3분기 누적(2004년 4~12월) 순이익은 2,510억원으로 2003회계연도 같은 기간(6,398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의 2004회계연도 3분기 누적(2004년 4~12월) 순이익도 582억원으로 2003회계연도 같은 기간에 비해 20%넘게 감소했다. 이처럼 전 금융권에 신상품 판매능력은 높아졌음에도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것은 ‘블루오션’이 형성되면 곧바로 ‘레드오션’으로 바뀌어버리는 금융시장의 풍토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정 금융기관이 신상품을 판매하더라도 수개월 내에 모든 경쟁 금융기관들이 상품을 쏟아내면서 차별화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판매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진을 줄이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이에 따라 신상품 개발에 따른 ‘독점판매권’을 강화하고 신상품 개발에 따른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는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홍진섭 금감원 선임조사역은 “2002년 배타적 이용권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으나 ‘신상품으로의 규정’이 어려워 자율규제기구에 신상품 여부를 판단하도록 이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신상품에 대한 독점권을 관련 법규에서 규정해 배타적 사용기간을 늘려줌으로써 상품개발에 따른 혜택을 늘리는 노력을 병행해야 상품개발에 차별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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