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하락에 따라 농가에 자동으로 지급되는 내년 쌀변동직불금 예산이 올해보다 두 배 넘게 불어난다. 올가을도 풍년이 예상돼 정부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공공비축량을 늘릴 수밖에 없어 총선을 앞둔 내년에 혈세가 많게는 조 단위로 투입될 것으로 우려된다. 연이은 풍년에 공급이 늘어 쌀 재고가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농가는 농가대로 신음하고 나라 재정은 재정대로 축나고 있다.
13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안(14조2,883억원)에 따르면 쌀변동직불금은 4,193억원이 편성됐다. 이는 지난해(1,641억원)보다 2.5배 많은 금액이다. 쌀변동직불금은 수확기(10~1월) 평균 쌀값이 농식품부가 정한 목표가격(80㎏당 18만8,000원) 이하로 내려가면 차액의 85%까지 보전해주는 자금으로 수확기 이듬해 2월께 지급된다.
쌀변동직불금 예산 급증은 올해도 폭우와 태풍 피해가 없어 쌀농사가 풍작 조짐을 보이면서 생산량이 풍년이었던 2013년(423만톤)과 지난해(424만톤)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올 수확기에 햅쌀이 쏟아지면 공급 과잉으로 쌀값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시중 쌀 도매가격은 지난 5월부터 2011년 이후 4년 만에 80㎏당 16만원 이하로 떨어진 후 이렇다 할 반등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년도 쌀 가격 안정용 재정 투입이 조 단위로 불어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단 쌀변동직불금도 책정예산 이상으로 지출될 수 있다. 농식품부는 올해 쌀값이 하락하자 2011년 이후 4년 만에 쌀변동직불금으로 1,941억원을 지원했다. 이는 예산(1,641억원)보다 300억원 초과한 금액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수준만 고려해도 내년에 4,000억원 이상의 쌀변동직불금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쌀값이 더 떨어지면 추가 지출은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뿐 아니다. 쌀값 추락을 막을 수 없으면 당국이 쌀을 추가로 매입해 공급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으면 쌀값이 더 하락해 쌀변동직불금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지난해 공공비축물량(37만톤) 외에 지난해 10월과 올 4월 두 차례에 걸쳐 과잉공급된 쌀 24만톤을 매입하기 위해 5,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만약 쌀값 하락이 이어지면 변동직불금 외에도 시장안정용 비축도 늘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년 4월 총선까지 겹쳐 쌀 가격 안정 여부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현안이다.
농업계에선서는 나랏돈으로 쌀값 하락을 막는 대책이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9월 정부 쌀의 재고량은 5년 만에 100만톤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고량 100 만톤 초과는 2008년, 2009년 풍년 후유증이 닥친 2010년(143만톤) 이후 5년 만이다.
가을 수확기에 공공비축물량마저 반입되면 쌀 재고량은 최고 130만톤을 넘을 것이라는 게 농정당국 안팎의 추산이다. 재고 1만톤당 5억원의 관리비용이 드는 것을 고려하면 쌀 공급 조절에 혈세를 투입하는 방식이 더 이상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센터 실장은 "쌀값 하락을 막으려면 시중의 쌀을 매입해 공급을 줄이든지 쌀소비를 촉진해 수요를 뛰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대북 지원이라는 카드가 있지만 이는 현재 상황을 볼 때 불투명한 해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