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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를 안보 문제와 북에 대한 시혜적 측면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대륙 진출을 통해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창으로 봐야 합니다."
이종석(57·사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경기 수원시청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 전망' 학술대회의 기조강연에서 남북 협력을 한국 경제의 전기적 발전을 위한 국가적 전략으로 설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인 이 전 장관은 "대북 정책에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한다"며 "순전히 우리의 이익, 경제적 이익을 기준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로 남북 군사충돌 위기까지 치달았던 상황에 대해 이 위원은 "30~40년 전 냉전시대로 돌아간 듯한 시대착오적 대결 구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남북 간의 상황 악화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할 수 있으며 거꾸로 동아시아 안정이 깨질 경우 한반도도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 위원은 동양사학자인 백영서 연세대 교수의 '동아시아 귀환론'을 언급하며 "귀환은 했지만 남북 대결로 온전히 돌아오지는 못했다"고 해석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부터 만주·중국·극동 지역까지 유기적 생활협력체를 이뤘던 동아시아가 지난 1945년 분단 이후 지리적 공간으로만 존재했는데 냉전 종식 후 공존의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의 귀환이다. 그러나 이 위원은 "한반도 평화가 정착돼야 비로소 동아시아가 완전히 돌아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중심의 질서를 일컫는 '차이메리카(Chimerica)'는 동아시아에도 적용된다. 신냉전을 언급할 만큼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지만 양대 강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상호 의존하기 때문에 대립과 협력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미중의 이해가 대립될 때 공통의 이익을 제안하고 협력 요소를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역할"이라며 "이를 외교 방향으로 삼고 전략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권에서 언급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은 안보와 경제를 절대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지만 10여년 전 비슷한 균형외교 전략이 나왔을 때만 해도 '반미'로 보는 시각들이 많았다"며 "이제는 이 문제를 국민들 스스로 고민할 만큼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은 "모두가 살기 위해 테러범과 대화하려는 사람을 친테러범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목표를 위한 방법론이 이념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기업들이 대륙으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길도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5·24 조치 해제 등 남북 경협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