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0월 14일] 방통위에 진흥기능 줘라

요즘 정보기술(IT)업계는 죽을 맛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모두가 고사(枯死)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의례적인 말이려니 했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위기의 골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깊다. 지난 10년 동안 IT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한국 대표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IT산업의 위상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IT 수출 증가율은 30%에서 10%로 줄어들었고 관련 벤처기업은 20%넘게 사라졌다. 이 지경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와 업계의 안이한 대응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 특히 시장원리를 무시한 막무가내식 규제와 적기에 이뤄지지 못한 진흥정책이 업계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일관된 IT진흥정책 시급 지금 업계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모멘텀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와 반시장 풍토에 가로막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일관성 있는 정책과 시의적절한 진흥책이 있어야만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관된 정책은 한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덕목이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정책이나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조직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방송통신산업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처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방통위는 방송융합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옛 정보통신부의 역할을 분리해 만들어졌다. 방통위는 일단 ‘융합’으로 대표되는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IT산업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방통위의 가장 큰 문제는 규제만 있고 진흥정책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새 정부의 부처조직개편에 따라 방통위에 IT산업 규제 기능만 남기고 대부분의 산업진흥 기능은 지식경제부로 이관됐다. 문제는 규제와 진흥을 분리하다 보니 규제기관은 규제만, 진흥기관은 진흥만 신경 쓰면서 서로 엇박자를 낸다는 데 있다.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것도 큰 문제다. 업계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통신요금인하, 방송사 민영화 과정에서 나오고 있는 불협화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든 문제를 권력이나 정치 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외풍에 시달리고 이로 인한 논란이 빚어지면서 추진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방송 쏠림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선 이 대목은 최근 핫이슈들이 방송 관련 분야가 많고 방송과 통신이 융합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적기 투자와 의사결정의 신속성이 생명인 IT 부문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빈번해진 것은 많은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규제와 진흥, 함께 이뤄져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나 방통위 안팎에서 “위기상황에 적합한 체제로 정부조직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수렁에 빠진 한국의 IT산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의 지원도 적기에 이뤄져야 하고 판단도 빨라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재 업계가 원하는 것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정책이다. 규제와 진흥이 따로 놀고 여러 부처의 눈치를 보는 구조 아래서는 업계의 안정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업계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방통위가 일관성을 가지고 IT산업 진흥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하거나 진흥기능을 대폭 보강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방통위도 주어진 환경만 탓하지 말고 업계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서야 한다. 지금 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채찍이 아니라 당근이다. 만약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IT산업의 붕괴는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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