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어머니, 어머니

[로터리] 어머니, 어머니 최태지 노란 은행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황병기 선생님의 침향무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정동극장의 가을은 아름답다. 재일교포 발레리나 출신인 내가 국립발레단장에 이어 정동극장의 대표라는 중책을 맡게 된 지 벌써 5개월. 평생 무대 위에서 살다가 뒤로 물러나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이 질문했던가. 그때마다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이다. 나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나는 남자 아이들과 장난치고 운동하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소녀였다. 그리고 나보다 뭐든지 잘하는 언니를 샘내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였다. 어머니는 그런 철부지 딸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발레 스튜디오로 데려가셨다. 우연히 만난 발레는 내게 놀라운 기쁨을 안겨주었다. 음악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 뭔가 나도 언니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것. 나중에 공부 때문에 그만두라고 했을 때에도 용돈을 모아 몰래 배우러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겁 없이 시작한 발레는 나에게 생각지 못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으며 유학을 꿈꾸던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국비 장학생 선발에서 탈락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새롭게 발레 인생을 시작하게 됐을 때에도 말도 서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발레는 지독한 자기 절제와 주역을 향한 불꽃 튀는 경쟁이 기다리는 냉정한 세계였다. 그런 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태지야, 최고가 되기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말아라. 남한테 평가 못 받으면 어떻고 넘어지면 어때. 매 순간 소신껏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살아라.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베풀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 어머니는 말만 그렇게 하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사셨다.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하며 자식들이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커나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면서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셨다. 그것은 나중에 뭔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계산이 아니었다. 옆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을 위해 당장 옷이라도 벗어주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저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뿐이었다면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화려한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수없이 헤매고 방황했다. 중요한 건 열심히 온몸으로 부딪히며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을 포용할줄 아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정동극장장으로 임명됐다는 신문기사를 꼬옥 끌어안고 돌아가셨다. “너 이제 한국 사람 됐지”라고 기뻐하시며…. 오늘도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면서 나는 우리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신 것처럼 나 역시 직원과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그런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입력시간 : 2004-11-0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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