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시론] 기본을 바로 세우자

鄭暢泳 연세대교수·경제학우리는 역사적으로 격동기에 살고 있다. IMF 사태가 아니더라도 20세기와 1천년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21세기와 2천년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즉, 두 세기와 두 천년대에 걸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볼 때 긴 역사의 흐름에서 바라보아야 마땅함을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IMF 사태가 발생한 후 처음 1년 동안은 지나친 비관론이 지배했었다. 위기일수록 장래에 대한 밝은 소망과 비전이 필요했으나 모두가 의기 소침하여 고개를 떨구고 지냈다. 이제는 다시 시계추가 다른 극단으로 치달아 조심성 없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지적한 대로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역시 지극히 위험한 태도이다. 이처럼 양극단 사이에서 여론이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에 몰입하여 현상을 제대로 냉철하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물론 여러 경제지표들이 호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도처에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으며, 금융의 세계화로 단기자본이 언제든지 일시에 대거 빠져나갈 수 있는 개방화시대에는 조금만 방심하면 제2, 제3의 외환위기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1980년대 초의 멕시코 사태 이후 작년의 브라질 사태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남미 여러 나라의 외환위기가 이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외환위기에 대비하는 유일한 방도는 한국경제의 기본과 기초를 강건하게 세우는 것 뿐이다. 우선 건전 재정을 유지하며, 저축을 늘리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이룩하며,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등 거시경제적인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아울러 금융제도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이룩하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사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은 후발국으로서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따라 잡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로 IMF 사태 이전에는 GDP나 교역량이 세계 11위에 이르는 G11 국가로 발돋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양적인 경제성장에만 치중하여 GDP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경제의 기초는 소홀히 다루었다. 비유를 든다면 공기를 단축하면서 서둘러 부실공사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발전으로 방향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 GDP의 성장에서 경제의 기초를 건실히 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도 매출 중심에서 이익 위주로 경영방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의 기본과 기초를 바로 세우는 일은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일(NATION BUILDING)에 버금가는 것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과제이다. 흡사 일본이 명치유신 때 모든 제도와 문물을 영국을 벤치마킹해 구축하였듯이 우리도 이번 기회에 선진국이 되기 위한 굳건한 기초를 반드시 세워야만 한다. 고층 빌딩이 계속 들어서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회 기반시설인 하수도마저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지난 여름의 홍수 피해도 하수시설만 온전하게 구비되어 있었다면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 파리의 하수도는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와 같다. 기본과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 선진국임을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우리가 서양 사람들에게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물으면, 반문하길 폴란드가 독일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되묻는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어렵다고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의 경제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초와 기본을 튼튼히 함으로써 일본을 따라잡는 절호의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이에는 최소한 20~30년의 긴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일본의 유치원 3년 의무교육 과정이 그러하듯 우선 우리의 초등교육은 예의바르고 근면·성실하며 철저히 물자를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2세를 가르쳐야 20년 후쯤 세계무대에 나가 동년배의 선진국 친구들과 비로소 경쟁이라도 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국부의 기초는 인간자본임을 상기할 때 어린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일은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된다. 다른 한편, 이탈리아는 2차대전이 끝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60차례나 정부가 바뀌었다. 현대 선진국가로 보기에는 미흡하게끔 스스로를 제대로 다스리질 못한 것이다. 우리도 의당 눈을 밖으로 돌려야 할 세계화, 개방화시대에 우리끼리의 소모전에 너무 많은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여·야 간에 늘 다투고 노·사 간에 늘 갈등을 빚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증유의 국난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마치 전쟁상태와 같다. 이러한 때에 여·야의 지도층이 국민을 위로하고 격려하지는 못할 지언정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계속한다면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는 좌절감만이 번지게 될 것이다.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이 잘 보여주듯 400여년 전 임진란의 그 모진 고초를 겪고도 그 후의 추이를 보면 우리는 역사에서 별로 배우지를 못한 듯 하다. 이는 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 행정, 금융, 재계 등 각 분야의 지도층의 잘못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데도 우리가 또다시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시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즉, 『IMF, 고통인가 축복인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기초와 기본을 바로 세워 새롭게 나라를 건설한다는 각오로 지도층이 수범을 보여 온 국민의 힘을 한 군데로 모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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