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고스톱은 효율적이다.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틀통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꾼'들의 세계에서 이런 것이 걸리면 말 그대로 작살난다. 그런데도 짜고 치는 고스톱은 여전하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 앞에 절차나 규정은 뒷전이다.
정부 정책을 고스톱에 비교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중국과의 마늘분쟁에서 정부와 무역위원회가 움직인 과정을 보면 이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역위가 29일 전체회의에서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연장해 달라는 농협중앙회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과정과 그 부작용이 특히 그렇다.
무역위가 신청을 기각한 이유는 정부정책이 미리 나왔기 때문이다. 마늘 수입에 따른 피해 농가구제를 위해 1조8,000억원을 지원한다는 정부대책이 무역위 개회 직전인 25일에 나오는 바람에 무역위로서는 사실상 할 일이 없게 된 것이다. 무역위는 29일 회의에서 4시간여에 걸쳐 격론을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역위가 사전에 무력화됐다는 점은 문제다. 당장 전성철 무역위원장이 30일 임면권자인 대통령에게 사표를 냈다. 전 위원장이 사표를 낸 까닭은 분명하지 않다.
농민들의 반발이 부담됐는지 다시 한번 출마하기 위해 정치적 명분을 쌓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경우가 반복된다면 무역위의 기능과 역할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는 점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전문가집단이 존경을 받아야 한다.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정상간 약속했던 외규장각문서의 반환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한 사서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해당분야에 지식과 애정을 가진 전문가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효율적인가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가 독립적인 전문가집단에게 찬성을 강요하고 중요한 자리를 맡은 인사가 적극적으로 맞서기 보다 '깨끗한 선비'처럼 발을 빼고 있다. 모든 것이 '짜고 치는' 데 익숙한 탓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의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권홍우<경제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