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엔화약세/파장] 일 '불황탈피'에 미 '묵시적 동조'

최근 엔화 급락세는 지난 12일 일본 정부가 취한 단기금리 인하와 채권 매입등 일련의 금융완화책을 계기로 촉발됐다.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경제는 8년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반면 「2차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져있는 일본은 여전히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엔화는 지난 8월 중순 이후부터 최근까지 강세 행진을 계속하면서 무려 27%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유로 출범을 계기로 엔화를 달러, 유로와 함께 「3극통화」로 부각시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여전히 회복조짐이 나타나지 않고있는 반면 미국 경기는 거품붕괴 우려가 사라지며 결국 『엔화 가치가 달러에 비해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 엔화 매도압력으로 작용했다. 또 미국이 지난해 3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하면서 국제금융자본이 엔화로 급하게 옮겨간 점도 그동안 엔화 강세를 부추겨왔다. 올 들어서는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3월말 결산을 앞두고 달러를 매각해 엔화 강세를 가속시켰다. 그러나 이같은 엔화 강세는 일본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려 일본경제를 압박한데다 미국 금융시장에서의 일본자금 유출은 미국 주식시장을 동요케 만들면서 미국 정부와 금융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대(對)일본 금융정책을 「수요 확대」에서 「통화공급 확대」쪽으로 옮기고 있는 배경에는 이같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로서도 엔화 강세와 장기금리의 상승으로 기업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이같은 조언을 받아들여 금융정책의 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금융전문가들은 미국이 엔화 약세를 용인하면서까지 일본의 통화공급을 늘리도록 종용하고 있는데다 일본 통화정책의 기조가 변화한 만큼 중장기적으로 엔화 약세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 소재 내셔널 오스트레일리아 뱅크의 로빈 애스피널 수석분석가는 『다음주에 125~127엔까지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일 열리는 서방 선진7개국(G7) 재무장관회담에서 일부의 예상처럼 「일정한 수준의 엔저」를 용인하는 쪽으로 환율정책이 전환될 경우 엔화 약세가 다시 가속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 금융기관들이 3월말 결산을 앞두고 장부상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간헐적으로 달러를 매각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일본정부의 통화팽창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 급속한 엔화 약세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19일 일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 경제기획청장관은 『달러당 120엔 전후가 적합한 수준』이라는 견해를 표명, 일본 정부가 급격한 엔화 약세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최근 1.8% 수준으로 떨어진 장기금리에 대해서도 『그 정도면 됐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금융전문가들도 『현재의 엔화 움직임이 아직 일본 정부의 통제권 안에 있다』는 점을 들어 당분간 엔화가 120~125엔 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4월 이후 일본경제에 회복조짐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올해안에 엔화가 130선 이상으로 급락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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