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소스코드 분석기 개발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사 도약 부푼 꿈
남들 가지않는 길 가야 진정한 성공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입구에 들어서자 카페테리아가 방문객을 맞았다. 직원들은 그곳에서 자유롭게 음료를 만들어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구석에는 만화책부터 업계 관련 전문서적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마련돼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긴 통로에는 대표와 직원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여럿 걸려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파수닷컴 고객사들의 이름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린 나무 그림이 붙어 있었다. 고객사가 늘어날 때마다 하나씩 추가한 나무열매는 곧 천장에 닿을 기세였다. 현재 파수닷컴의 고객사는 1,100개를 넘는다.
국내 기업 문서보안 1위 파수닷컴의 조규곤(54ㆍ사진) 대표와 컴퓨터의 인연은 이진법에서 시작된다. 조 대표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이진법을 배웠다. 하지만 도무지 이진법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조 대표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에 써먹습니까?" 돌아온 답변은 야속하게도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한 거야"였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조 대표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컴퓨터에 관련된 책을 보게 됐다. 그는 "중학교 때 선생님이 답해주지 못한 이진법의 중요성이 거기 있었다"며 이를 계기로 컴퓨터에 호감을 느껴 전기공학을 전공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친 조 대표는 삼성전자에 취직했다. 당시 HP의 PC를 팔던 삼성전자는 PC사업을 독자적으로 한다며 대학원 졸업생 10명을 뽑았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하드웨어 쪽에는 좀처럼 관심이 가지 않았다. 조 대표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도 비슷한 생각을 해 10명 중 절반은 유학을 떠났다"고 회상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모든 게 순조롭지는 않았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대주제는 정했지만 그 안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조 대표의 머리는 지끈거렸다. 그는 "네트워크나 통신 쪽을 하면 돈이 되겠다 싶었지만 이왕 공부하는 김에 제일 어려운 분야를 해보자고 결심했다"며 "당시 인공지능이 제일 중요한 과제였고 가장 어려운 분야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분야지만 인공지능은 돈벌이가 되진 못했다. 그래서 박사를 마친 조 대표가 향한 곳은 삼성SDS. 조 대표가 삼성전자를 떠난 1987년에 설립된 삼성SDS는 당시 시스템통합(SI) 사업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는 "SI 사업을 하면서도 어떤 소프트웨어와 기술이 새롭게 나왔는지 잘 모르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제서야 찾는 식이었다"며 "우리가 사다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을 미리 조사해 비교 평가해놓으면 좋겠다 싶어 '오픈솔루션센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조 대표는 오픈솔루션센터에서 지금의 파수닷컴을 있게 한 디지털저작권관리(DRM) 기술을 만났다. 그는 "어느 날 DRM이란 기술이 삼성그룹에 소개됐는데 다들 잘 모르니까 우리 쪽에 전담시켰다"며 "당시 디지털콘텐츠를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있게 하려면 불법복제를 막을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찰나였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결국 남들이 다 말리는 일을 저질렀다. DRM 기술로 사내벤처를 꾸린 것이다. 파수닷컴은 네이버에 이어 삼성SDS의 사내벤처 2기 출신이다. 조 대표는 "당시 회사의 주력은 SI시장이었다"며 "소프트웨어 상품에 주력하려면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8개월 동안 사내벤처로 있다가 2000년 6월 파수닷컴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당시 나이 44세로 남들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었다.
파수닷컴의 초창기 이름은 '뉴트러스트(NuTrust)'. 조 대표는 "해킹을 막는 것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를 담아 직접 지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대표의 의도와 달리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의미전달이 불분명하다는 것. 이에 제일기획에 거금 8,000만원을 주고 회사 이름을 다시 만들었다. 그는 "사실 파수닷컴이란 이름이 촌스럽고 글로벌 이미지와 안 맞는 것 같아 반대했었다"며 "그런데 기억하기 좋아 오히려 초기 마케팅 때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해외에서도 발음하기 쉬워 좋은 평가를 얻었다"며 13년 동안 회사명과 CI를 바꾸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충분한 경험과 기술력에 노련미까지 갖췄으나 창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파수닷컴이 처음 선보인 상품은 '저작권 클리어링 서비스'였다. 이는 온라인상에서 콘텐츠 파일을 내려 받아 결제하면 암호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콘텐츠 유통자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서비스였다. 당시 약 500개의 사업자가 이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콘텐츠 거래 자체가 활발하지 않다 보니 수익을 내기 힘들었다. 조 대표는 "창업 이후 5년 동안은 쓴 돈이 벌어들인 돈보다 많았다"며 "2002년도에는 든든했던 초기 자본금도 바닥이 나 결국 감원을 하고 직원들 월급을 몇달간 유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조 대표는 회사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력하던 사업 분야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DRM 기술은 그대로 이용하되 대상을 디지털콘텐츠에서 기업의 문서파일로 전환했다. 이 같은 결정으로 등장한 것이 '파수 시큐어다큐먼트'다. 조 대표는 "당시 의사결정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회사는 상당히 위험했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기업용 문서보안 솔루션을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실적이 빠르게 호전돼 2005년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기업용 문서보안시장을 개척하자 경쟁사들도 따라붙었다. 조 대표는 "사실 DRM에 달려들 회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시장에 경쟁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막상 입찰 때 가보니 경쟁업체가 들어와 있었다. 조 대표는 "뒤늦게 경쟁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때부터 차별화된 전략으로 경쟁에 임했다"고 전했다. 파수닷컴의 대표적인 경쟁력은 하나의 제품으로 100개가 넘는 고객사를 다 응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객사별로 맞춤화된 제품을 제공하기보다 단일화된 전략을 구사해 유지보수 비용과 부수적인 업무를 줄였다. 조 대표는 이 같은 전략을 '좋은 기성복'에 비유했다. 실제로 큰 효과가 따랐다. 경쟁사들이 고객사에 제공한 제품 하나하나의 유지보수에 매달리는 사이 단일화 전략을 꾸준히 추진하자 뚜렷한 실적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오피스를 비롯한 관련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될 때도 일괄적으로 빠르게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켜주니 고객만족도도 경쟁사의 맞춤 서비스보다 더 높아졌다.
적절한 전략과 제품으로 국내에서 꾸준한 성장을 이뤘지만 조 대표는 작은 성공에 회사가 익숙해져 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DRM에 국한된 회사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07년에 DRM과 전혀 상관없는 제품이자 신성장동력으로 프로그램 소스코드 분석기 '스패로우'를 개발했다. 조 대표는 "참새가 벌레를 잡아 먹듯 버그를 잡아먹는 새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제품개발에 더해 해외진출도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 2009년에 국내 보안업계 최초로 국제보안콘퍼런스(RSA)에 참가한 뒤 올해까지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지사도 설립했다. 또 연내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조 대표는 "상장 주관사와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며 "준비는 이미 다 돼 있다"고 전했다.
파수닷컴의 비전은 '2020년까지 100대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는 것'이다. 조 대표는 "2010년에 정한 비전"이라며 "'스패로우' 개발과 해외진출 등은 이 같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의도적으로 회사 로고나 문구에 DRM 리더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리더로 적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창업을 하려면 우선 자기가 만들려는 제품의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단 시장이 커야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쉬운 아이디어는 금방 후발주자들이 따라붙게 된다"며 "아주 어려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RM 기술 하나로 시장 개척… 국내외 22개 특허 보유 박민주기자 |
■ 조규곤 대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