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양형기준은 사법사상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유사범죄에 대해 법원이나 재판부에 따라 선고형량이 둘쭉날쭉,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가중돼 왔다. 특히 정치인이나 재벌 등 권력층이 관련된 사건에서는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다른 가벼운 형량이 내려지기가 일쑤여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어느듯 「사회정의」로서 자리매김 할 정도가 됐다. 실로 법치주의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대법원이 이번에 14개 주요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마련하게 된 것은 법원·재판부마다 제 각각인 양형을 통일,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양형이 판사의 신성불가침한 고유권한이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예측 가능한」양형의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이번 양형기준에 대한 일반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물론 이 기준이 일선 법관들에게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법관들의 형량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여느면 법관의 재량권을 제한 할 수있다는 점에서, 또 법 조문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저해(沮害)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다.
이번 양형산정에서 대법원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공무원의 청렴도다. 비록 뇌물액수가 적다하더라도 공무원이 먼저 이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실형을 선고토록 한 것이다. 정부의 반(反)부패운동과 궤(軌)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기대가 크다. 아쉬운 점은 정치인의 뇌물에 대해서는 뚜렷한 제시가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특가법상 3,000만원 이상에 대해서만 실형을 원칙으로 한다는 제시 뿐이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감안한 사법부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국 법률도 운용에 묘(妙)가 달렸다. 이번 양형산정을 계기로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회복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