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안공혁 <손해보험협회 회장>

비행기에서 내린 외국 신사의 눈에 깨끗하게 정돈된 공항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간 한국의 첫인상이 마음에 드는 듯한 미소가 흐르고 택시를 잡아타는 외국인. 그러나 그때부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택시의 난폭운전이 시작되고 뒷좌석에서 사색이 돼 있던 외국인이 결국 도로 한복판에 내려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것은 몇 년 전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안전운전 캠페인 광고의 내용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제작됐지만 우리의 운전문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던 광고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운전행태와 심리를 들여다보면 이 광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로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우리의 운전풍경이 다음에 열거하는 운전비법들로 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교통법규는 철저히 안 지킨다. 남 생각하고 양보하면 목적지에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차에 방향지시등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지시등을 켜면 뒤차가 달려들기 때문에 안 켜는 게 차라리 낫다. 심야나 새벽시간에 신호를 지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언제나 주차장이다. 교차로에서는 우선 차머리부터 들이미는 게 중요하다….” 이처럼 언뜻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운전습관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우리 도로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고 또한 웬만한 운전자는 한번쯤 당해보거나 실제로 해본 것들이 대부분인 상황들이다. 그만큼 뒷모습을 돌아보지 않아서 일 뿐 우리는 난폭운전이 난무하는 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사(戰士)들이다. 심각한 것은 우리 중 대부분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도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외줄타기 같은 위험상황이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각종 난폭운전과 비양심운전을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단속에 걸리지 않는 것은 물론 사고 없이 잘도 다닐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다른 운전자들이 모두 알아서 피해주는 것이 비결일 듯싶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최악의 위험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보니 무감각해져서 그렇지 실제로는 심각한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지 않겠지만 진짜 전쟁터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라크전에서의 미군 사망률보다 높은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 사망률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거울을 보듯 나의 운전습관을 관찰해보자. 나는 도로의 전사인가 아니면 운전자인가. 만일 후자라면 당장 운전대 잡는 것을 두려워하는 버릇부터 길러야 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을 사리는 일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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