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상생은 소통에서] <상> 밀어붙이는 정부, 숨죽인 기업

"대기업 돈보따리 풀어라" 일방 강요에 동반성장 뒷걸음질<br>'가격인하' 말 안들으면 "공정사회·물가안정 저해" 낙인찍어 담합·세무조사<br>정부-기업 소통공백 심화 자칫 시장경제 판 깰 우려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2011년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2006년 9월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가 끝나자 조건호 당시 전경련 부회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조 부회장은 "대기업들이 투명화되고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등 많이 변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규제는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또 "공무원들이 재계를 컨트롤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며 얼굴을 붉혔다. 순환출자금지제도를 도입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불과 5년 전이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이 안 가는 재계의 강단 있는 모습이다. 당시만 해도 재계는 정부에 할 말은 했다. 그런 재계가 지금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소통의 전제조건인 의견표명조차도 거의 없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들어 대기업 집단이 '공정사회' '동반성장' '물가안정'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낙인 찍힌 탓이다. 정부는 고환율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게 해줬는데 왜 돈보따리를 풀지 않느냐며 대기업에 눈을 부라리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정부 시책에 적극적이지 않은 대기업에는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라는 총을 빼 집중 포화를 가하거나 그럴 태세를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 재계는 질식상태다. 현 정부 출범 직후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대규모 투자'를 주고받던 정부와 재계의 소통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겉으로는 대통령ㆍ장관들과 대기업 총수들이 여러 차례 회동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부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자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소통과 합의가 사라진 자리에는 '막무가내식'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만 남았다. 실제로 최근 3개월여 동안 물가잡기에 나선 주요 경제부처가 벌인 행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의심케 할 정도다. 올 1월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 값이 묘하다"는 발언을 신호탄으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뒤질세라 기름 값을 내리라며 융단폭격을 가했다. 급기야 지난달 말 공정위가 '원적지 관리' 담합 소명을 통보하자 정유사들은 두 손을 들어버렸다. 앞서 발생한 롯데의 '통큰치킨', 캐피털업계의 고금리 문제도 정부의 압박에 결말이 비슷했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현실성이 없다고 공격을 받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 역시 요지부동이다. 보다 못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비판의 직격탄을 날리고 재계와 학계가 입을 모아 반대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사태는 악화일로에 있다. 이 회장은 사과를 해야 했고 삼성물산과 호텔신라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한술 더 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3일 삼성의 공정협약식 자리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는 을(乙)이 죽는다 해서 '을사조약'으로 불릴 정도"라며 독선적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재계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의견을 수렴ㆍ조정하기는커녕 미리 정해진 결론을 강요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위원들도 반(反)대기업 인사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거수기 위원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금승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민간 조직으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청 산하 중소기업협력재단 밑으로 들어가버려 민간 자율성을 상실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상명하달'식 대기업 정책이 시장원리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을 크게 저해한다는 데 있다. 이에 더해 재계와 학계가 강제적인 동반성장제도, 가격규제 등의 위험성을 경고해도 정부는 도대체 들으려 하지 않아 폐해가 계속 양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적자가 나더라도 기름 값을 내리라"는 최 장관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개발독재식 사고가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산업부처 장관이 외국 투자자 등 주주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민간 기업에 손실 입고 가격을 내리라고 목청을 돋우는 것은 시장경제의 판을 깨뜨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신 '관이 시키면 민은 군말 없이 따라줘야 한다'는 식의 후진적이고 독단적인 경제관이 현 정부의 기조가 됐다.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반성장 등을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같이 합의하고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 정책을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있어 문제"라고 진단했다. 4대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소통의 부재는 기업여건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키고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윽박지르기는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단기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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