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세균 "유전자 조작해 질병 치료제로 쓴다"

유전자 변형 세균으로 '난치병 치료제' 개발<br>부작용 적은 '킬러 세균' 배양…임상실험 임박<br>인간 통제서 벗어날 경우 생물학적 재앙 우려도

세균 "유전자 조작해 질병 치료제로 쓴다" 불결하게만 생각했던 세균, 살모넬라균에 대장균DNA 삽입해 암 치료 활용등과학자들 유전자 변형기술 동원 신약개발 나서 충치 원인 무탄스 균에 '새 효과 발휘능력' 이식도일부선 "무분별한 남용땐 생물학적 재앙 초래 우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유전자변형 기술을 동원하면 불결하게만 생각됐던 세균들이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 최근 과학자들은 첨단과학기술을 동원, 인간에게 질병을 유발하던 세균을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 향상에 이로운 존재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유전자변형 기술을 동원해 세균이 암, 크론병 등 난치병 치료 능력을 갖도록 DNA를 재설계하고 있는 것. 과학자들은 이들을 통해 부작용이 적고 치료효과가 탁월한 신약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무절제하게 유포될 경우 유전자변형 세균이 생물학적 대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 ◇ 해로운 세균, 이로운 세균 세균(박테리아)하면 흔히 질병을 유발하거나 건강을 위협하는 불결하고 더러운 미생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인간에게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균들의 대부분이 세균이니 만큼 세균과 병원균을 동일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멸균이라는 말이 건강의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멸균시켜야 할 세균을 가지고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세균을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인간에게 이로운 세균으로 건강에 적대적인 세균들을 제거해 삶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음은 물론 암(癌)과 같은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로운 세균으로 해로운 세균을 잡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인 셈이다. 사실 인간은 이미 몇몇 세균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건강음료로 자리매김한 각종 요구르트다. 여기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 바로 세균이다. 주름제거용 주사제로 각광받고 있는 보톡스도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세균이 만든 독소다. 이외에도 오ㆍ폐수의 분해나 바이오디젤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에도 다양한 종류의 세균이 활용된다. ◇ 세균의 재발견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인간에게 유익한 세균을 기능성 세균이라고 칭하며 활용방안 모색에 주력해왔다. 지난 1970년대 초 영국 런던 대학의 미생물학자 존 스탠포드 박사는 우간다에서 결핵 백신을 연구하던 중 호수의 진흙에서 마이코박테리움 박케(M 박케)라는 신종 세균을 분리해냈다. 그는 당초 이 세균이 결핵 백신의 천연보조제 역할을 해 결핵 예방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M 박케는 뜻하지 않게 암ㆍ결핵ㆍ알레르기의 증세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근의 쥐 실험 결과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를 증대해 부작용 없이 우울증을 호전시키며 말기 암 환자의 수명연장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 세균은 영국의 사일런스테라퓨틱스사에서 상용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스웨덴의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크리스티안 루스 박사는 사람의 목구멍에 서식하는 여러 가지 세균을 스프레이에 담아 상품화했다. 이 제품은 소규모 임상실험에서 호흡기질환의 원인균인 연쇄구균의 감염률을 현저히 줄이는 효과가 입증됐다. 다만 대규모 임상실험을 앞두고 투자자를 찾지 못해 양산되지는 못했으나 냉동저장고 안에서 투자자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 유전자 변형 기술로 환골탈태 최근 들어서는 자연상태의 세균이 지닌 이로움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좀더 능동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유전자변형 및 재조합 기술을 적용해 아예 세균에 사람들이 원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이식해버리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인 오라제닉사는 충치 원인균인 무탄스균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충치 유발 능력을 제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에탄올 생산 균주인 자이모모나스 모빌리스의 알코올 생성 유전자를 무탄스균에 삽입해 당분을 먹은 뒤 치아를 부식시키는 산(酸)이 아니라 알코올을 배설하는 무탄스균 개발에 성공했다. 실험결과 구강에 이 세균을 주입한 쥐는 아무리 많은 당분을 섭취해도 충치 발생이 거의 없었으며 오라제닉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만간 임상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아카데믹메디컬센터의 마이켈 페렐렌보슈 박사는 치즈 제조에 쓰이는 락토코커스 락티스-Thy12 균을 유전자변형해 난치병인 크론병 정복에 나섰다. 인체 면역체계가 장내 정상 세균을 공격할 때 고통스러운 크론병이 생기는데 페렐렌보슈 박사는 L 락티스-Thy12 균에 탁월한 면역체계 진정효과를 지닌 인터루킨-10의 생성 유전자를 이식한 것이다. 임상실험에서 이 세균 제제를 투여받은 환자 10명 중 8명은 아무런 부작용 없이 상당한 증세 호전을 보였다. 또한 미국 예일 대학의 미생물학자 데이비드 버뮤즈 박사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에 대장균 유전자를 삽입해 암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이 유전자 변형 살모넬라균은 암 치료 약물을 활성화시키는 효소를 생성하는데 임상실험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거대 종양 환자의 종양 크기를 눈에 띄게 줄였다. ◇ 생물학적 안전성 확보해야 유전자변형 세균 연구자들은 이처럼 세균을 인간에게 유용하게 이용하는 방향으로 세균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발 깔창에 항균 처리가 아닌 발 냄새 유발 균을 잡아주는 세균을 처리하고 세탁 세제에도 향기 성분 대신 땀냄새 제거 세균을 넣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록펠러 대학의 데이비드 탈러 박사는 “나노로봇을 몸 안에 돌아다니게 하기보다는 일명 ‘킬러 세균’으로 나쁜 세균을 잡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다 편안함을 줄 것”이라며 “지금은 세균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 육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항생제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오히려 내성을 갖춘 슈퍼 세균이 탄생했음을 돌아보면 이들의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다. 유전자 조작 세균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연계에 유출됐을 경우 어떤 폐해를 초래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지구 전체가 생물학적 대재앙을 맞을 개연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세균의 유전자를 변형할 때 ‘자폭 인자’를 함께 넣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변형 세균이 일정 시간 혹은 일정 기간 이후에는 스스로 사멸하도록 DNA를 조작한다는 것. 이렇게 하면 인체나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탈러 박사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인체는 완벽히 소독된 환경에서는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유전자변형 세균의 완벽한 생물학적 격리기술이 확보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이들이 생활 전반에서 활약하게 될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아카데믹 메디컬센터는 L.락티스-Thy12균에 면역체계 진정효과가 있는 인터루킨-10의 생성 유전자를 이식, 크론병을 정복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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