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정책과 이념

정책은 주로 현실사회의 문제 해결에 목표를 둔다. 정책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를 구현해보자는 것이다. 미국에서 정책학이 등장한 배경도 지난 60년대의 흑인폭동과 월남전으로 인한 극도의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정책학의 태동이 추상적인 이념이나 정치의 세계와 달리 현실 문제에 천착한 영역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처방적이고 실용적인 이 학문의 특성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정책이 이념이나 정치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정당정치체제하에서 정부정책의 큰 틀은 집권당의 정치이념이나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바람직한 상태라는 것도 가치판단의 문제여서 다분히 정치적이다. 이념성이 배제된 정책이라도 문제의 복잡성과 결과 예측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책 실패를 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권 마지막 해로 접어든 참여정부의 고민은 국민들에게 이렇다 할 실적을 보여주지 못한 채 정책 실패로 얼룩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열린 ‘참여정부 4주년 기념 합동 심포지엄’ 특별강연에서 “대통령이 밉고 매력이 없을 때는 중립적인 정책도 그냥 반대하는 여론 경향이 발생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사사건건 이념의 잣대로 정책을 재단하는 바람에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반박이다. 하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정책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그러한 지경에 이르게 한 대통령 자신이 져야 한다. 참여정부가 여러 정책에서 실패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기체와 같은 정책의 속성을 도외시한 채 현실 문제의 해결보다 이념이 과잉투사됐기 때문이었다.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정책수단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계층간 이해대립의 구도로 접근하는 바람에 정책 의도와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외교·군사정책 등도 이념의 덫에 걸려 색깔논쟁과 감정 대립으로 불신의 앙금만 더했다. 노무현 정부와 대결의 칼날을 곧추세웠던 보수 진영도 미래의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로 갈라진 이념 대립은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 판도를 가를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유권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극단적인 보수·진보의 양분구도를 넘어 최근 중도층이 더욱 두텁게 형성되는 양상으로 변했다지만 선거가 임박해지면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도 유권자의 이념 성향을 의식해 지금은 이구동성으로 중도개혁 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념 대결로 상대 진영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 뻔하다. 보수 진영의 강세에 맞서 최근 진보 진영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창조한국미래구상’을 발족해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대목이다. 우리 사회가 해묵은 이념 대결로 인한 정책 실패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이 진정한 정책선거로 전환돼야 한다. 소모적인 색깔논쟁에서 벗어나 절박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 돼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도 1일 ‘2007년 대선 매니페스토 물결운동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첫선을 보였던 이 운동이 이번 대선에서는 뿌리를 내려야 한다. 유권자들도 이제는 이념의 거품을 덜어내고 교육·주택·복지·환경 등 삶의 문제를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이념 과잉으로 인한 정책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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