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각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우려 분위기를 반영하듯 법원은 강간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모습이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을 벗기지 않아도 강간 의도가 있다면 강간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공공건물 여성 화장실에서 강간 범죄가 발생하면 주거침입 강간죄를 적용해 판결을 내렸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ㆍ청소년ㆍ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이어 성인 대상 강도강간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선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고법 형사9부(김주현 부장판사)는 보험설계사를 집으로 끌어들여 억지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강간)로 구속 기소된 김모(57)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정보공개 5년을 명령했다고 16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2월 고액 보험에 들어줄 테니 청약서를 가지고 오라며 보험설계사 최모(42)씨를 집으로 유인했다. 김씨는 상의를 벗어 가슴과 팔에 난 상처를 보인 뒤 "예전에 조폭이었다"며 협박하고 몸부림치는 최씨를 몸으로 눌러 강간했다.
강간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최씨의 팔과 다리에 심한 손상이 남아 있지 않은 점, 사건 직후 최씨가 김씨와 긴 시간 통화한 점 등을 석연치 않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고 가해자의 폭행ㆍ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강간죄 폭행이 반드시 신체의 손상을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데 비해 김씨는 계속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역시 강간죄를 엄격하게 해석한 확정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은 6일 20대 여성을 인적이 드문 장소로 데려가 폭행하고 협박한 이모(42)씨에게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에 정보공개 10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인근 주차장으로 끌고 간 사실과 이씨가 성인용품을 소지한 점 등을 고려하면 강간의 의도가 인정된다"고 봤다.
9월에는 화장실에 가는 여성을 따라 들어가 성폭행을 한 회사원에 대해 주거침입 강간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나왔다. 주거침입 강간은 성폭력 범죄 처벌특례법상 징역 5년 이상이 선고 된다. 3년 이상 선고되는 형법상 일반 강간보다 무거운 죄에 속한다.
이 같은 판결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강도강간을 엄벌하겠다는 분위기와 상통한다. 양형위는 지난달 열린 전체회의에서 강도강간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가중 요소가 있을 경우 현행 양형 기준에서는 최고 징역이 13년형까지지만 앞으로는 무기징역형까지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특별양형인자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경 요소인 '폭행ㆍ협박이 아닌 위계ㆍ위력을 사용한 경우'를 삭제하는 방안도 논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