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정부 대책, 왜 약발 못받나

타이밍·신뢰·액션플랜 '3無'에 통제력 잃어<br>구체적 정책없이 말만 앞세워 시장혼란만 부추겨<br>미숙한 시장 컨트롤…신뢰잃고 위기·공포 조장도


“솔직히 정부는 지금 구체적인 정책 없이 말만 앞세워 시장을 오히려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지금은 말이 아니라 액션 플랜이 필요한 때다. 당국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23일 금융시장대책의 핵심실무를 담당하는 정부 고위당국자)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기능이 사실상 상실돼가는 조짐이다. 정부가 연일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금융시장의 혼란은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서 약발을 전혀 받지 못한 이유로 ▦타이밍 부재 ▦신뢰 부재 ▦액션 플랜 부재 등 ‘3무(無)’를 꼽는다. 경제 사령탑을 자처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시장에서 역할을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시장의 물꼬를 열기 위해 시급한 은행채 매입 등을 놓고는 금융위와 한국은행이 정면 충돌 직전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책 당국자들이 시장을 통제하지 못한 채 심지어 자중지란의 모습을 모이고 있는 셈이다. ◇금융안정대책, 약발 ‘제로’=지난 19일 정부는 요동치는 금융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종합대책으로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재정부ㆍ한은ㆍ금융위가 힘을 모아 내놓은 ‘회심의 역작’은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한 채 금융시장의 혼돈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기대 속에 개장한 20일 코스피지수가 불과 2%대의 미약한 반등을 보였을 뿐 21일부터 23일까지 지수는 사흘 연속 하락하는 동안 무려 12%의 낙폭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이미 지수 네자릿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외환시장도 주 초반 1,310원선으로 반짝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이다가 증시와 함께 요동치고 있다. 23일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1,408원으로 거래를 마친 상태. ▦1,000억달러의 은행외채 지급보증 ▦외화유동성 300억달러 공급 ▦장기적립식펀드 세제혜택 등 시장안정을 위해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사실상 거의 내보인 ‘시장불안 극복방안’은 시장에서 폭주하는 공포감을 전혀 잠재우지 못한 셈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정부 신뢰, 시장 통제력 상실=모건스탠리는 정부 대책이 시장 약발을 잃은 것이 ‘타이밍’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책발표가 시장이 요구하는 최적의 시점을 놓침으로써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 지급보증만 하더라도 선진국, 하물며 싱가포르 등 주변국들이 조치를 꺼낸 후에야 정책을 내놓았다. 그 사이 외인들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게다가 미국ㆍ유럽ㆍ호주ㆍ싱가포르 등 주요국들이 이미 우리 정부와 유사한 정책을 발표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장의 주의를 환기할 만한 신선도도 떨어졌다. 모건스탠리는 이밖에도 부동산PF 등 잠재적 위험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점도 정부대책의 효력을 떨어뜨린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위기를 진정시켜야 할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고 오히려 시장의 위기감과 공포심리를 조장했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이 IMF 위기와는 다르다’던 이명박 대통령과 강 장관 등 최고책임자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뒤바뀐 발언을 쏟아내 정부에 대한 신뢰감을 흔들고 공포심리를 부추겼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정책의 헛손질로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데다 최근에는 정부가 나서서 해외자산을 팔아라, 달러를 모으자 하는 식의 위기 분위기를 유발해 정책발표 이후 시장호전에 대한 기대감도 꺾어놓았다”며 “심리 컨트롤이 너무나 미숙했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불안한 시장에 기름을 붓는 최고책임자의 발언은 제어가 안 되는 시장의 혼돈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같은 뉴스가 해외로 여과 없이 노출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과장된 우려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한국 외평채에 붙은 프리미엄이 모건스탠리보다 낮은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외화유동성의 문제를 감안해도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라며 “국내에서 지나치게 안 좋은 뉴스가 나간 데 따른 심리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더욱 문제는 구체적인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은 채 말이 앞서는 정부의 모습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2일 사석에서 “지금은 절대 말부터 꺼내서는 안 되는 시점이다. 액션으로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23일에도 자산운용사들의 유동성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고 한은은 반발했다. 내부 조율도 없이 불쑥 정책을 꺼내고 이를 놓고 혼란이 다시 가중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시장만 멍이 드는 형국이 지속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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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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