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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4대 왕인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던 1592년(선조 25년)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금의 덕을 기려 바쳐진 '정륜입극성덕홍렬'이라는 존호도 삭제할 것을 명했다. 왜구들에 밀려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간 마당에 무슨 낯으로 존호며 왕이냐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바로 지병인 '심질(心疾)', 즉 정신분열증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갖고서도 중요한 행적이나 업적을 남긴 대표인물 60명을 정리한 책 '한국장애인사'가 출간됐다. 그간 잘 조명되지 않았던 역사를 조명한 이 책은 한국장애인에 대한 여러 저술을 집필해온 정창권·윤종선·방귀희·김언지 교수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으로 펴냈다.
앞서 언급한 선조는 정신병이었지만, 장애가 있었던 왕은 그 뿐이 아니었다. 세종대왕과 숙종은 시각장애가 심했고 경종은 성기능장애,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자폐증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왕족으로 명문가 후예로 태어나, 그나마 재능과 이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일까.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 요즘 역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사람들을 구분할만큼 사회의 인식이 개선됐다지만, 사실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상당히 선진적이었다.
책은 오히려 근현대로 접어들면서 '불구자'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또 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며 배제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대표저자인 정창권 교수는 "장애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비장애인을 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선은 전통시대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라며 "우리의 한 축을 이뤘던 장애인사를 통해 완전함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조화를 추구하려 했던 진정한 우리 역사를 되찾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