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총회꾼, 그리고 소송꾼

김희중 <논설위원>

기업들이 한해 경영 성과를 결산하는 주주총회 시즌이다. 주총의 백미는 역시 경영진과 주주간에 벌이는 공방이다. 수익은 적게 냈으면서 임원 보수는 너무 많게 책정한 문제에서부터 적절하지 못한 경영판단에 이르기까지 공방의 폭은 넓다. 그러나 주주와 경영진간 공방의 밑바탕에는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긴장 속에서 시작하지만 마무리는 항상 “잘해보자”로 끝난다. 주총에는 예나 지금이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집단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전까지만 하더라도 총회꾼들이 설쳤다. 당시 총회꾼들은 개인 또는 몇몇 사람 단위로 활동했으며 대개는 숫자에 달통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노리는 회사는 주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었다. 시민단체·외국자본 공세 거세 관치금융이 심했던 당시에는 은행장들도 정부가 낙점했다. 당연히 외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은행들은 총회꾼과 타협으로 주총을 무사히 넘기려는 관행이 생겨났다. 주총 전에 조용히 불러 봉투를 주고 원활한 회의 진행을 부탁했다. 당시 총회꾼으로 명성을 날린 몇몇 선수(?)들은 어지간한 기업체 중역보다 많은 보수를 주총 한철 장사로 챙겼다. 이 같은 행태는 해마다 반복됐다. 그러나 IMF 관리를 받으면서부터 총회꾼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무분별한 기업확장과 분식회계 등 국내 기업의 고질이 만천하에 속속 드러나면서 부도나 적자를 내는 기업이 속출했다. 기업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살벌한 판에 총회꾼이 설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더구나 IMF라는 외인구단이 들어오면서 기업에 대한 감시가 철저해져 이런 뒷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총회꾼이 힘을 잃은 자리에 시민단체들이 들어섰다. 시민단체들의 요구는 총회꾼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총수 1인에 의한 독단경영을 문제 삼았고 투명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계열사 지원 문제도 거론했다. 정부와 IMF의 감독에 이어 시민단체까지 기업 감시에 나서면서 기업들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혹독한 시험을 치른 우리 기업들은 이제 국제기준에 맞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시집살이가 좀 지났다 싶으니 이번에는 외국인들이 우리 기업을 흔들고 있다. 한 외국자본은 어떤 기업은 지배구조가 뛰어난 기업이라고 추켜세우고 어떤 기업에는 총수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문제 삼자 해당 기업은 경영권에 방어에 나섰고 그에 따라 주가는 크게 뛰었다. 이 외국자본은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법으로 투자원금의 몇배나 되는 이익을 거뒀다. 이 자본은 한술 더 떠 일반주주들도 이 기업의 총수를 몰아내는 데 힘을 모으자고 한국의 주주들을 부추기고 있다. 주식시장의 시세를 합한 시가총액이 세계 15위인 대한민국, 그리고 국내 4대그룹에 속하는 굴지의 대기업이 일개 외국자본에 몸통이 흔들리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 정도다. 총회꾼ㆍ시민단체ㆍ외국자본이 노리는 것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기업의 약점이다. 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기업 스스로 깨끗해지는 길밖에 없다. 기업 스스로 투명성 높여야 회계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외국자본의 공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트집 잡힐 짓을 안하는 게 대책이다. 더구나 오는 2007년부터는 증권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부도덕한 기업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연결 회사만 140개가 넘고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일본 세이부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은 총회꾼과 짜고 지분율을 거짓으로 신고한 게 발단이었다. 앞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제도가 도입되면 한해에 3,000명이 넘는 변호사가 매년 쏟아진다고 한다. 현재 연간 1,000명의 배출만으로 변호사의 공급과잉 얘기가 나오고 있는 판에 3,000~4,000명이 쏟아질 경우 기업 관련 송사도 크게 늘어 날 것이다. 소송꾼의 표적이 안되도록 기업들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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