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여성스타 이용하는 산업시스템

얼마 전 우연히 본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여자 가수인 핑크(Pink)가 새롭게 발매한 앨범이 화두였는데 문제가 된 노래는 바로 ‘멍청한 소녀들(Stupid Girl)’이었다. 핑크가 고발하는 멍청한 소녀들이란 유명 잡지에 등장하는 스타들을 따라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십대 소녀들을 일컫는다. 소녀들은 패리스 힐튼, 린제이 로한과 같은 스타들의 삶을 무작정 모방한다. 모방을 위해 그들은 수십만원대의 명품을 구매하고 부모의 카드를 훔치기도 하며 심지어는 포르노 배우 수준의 노출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머나먼 서방 세계의 일에 불과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방송프로들 선정적 장면 많아 현대사회에서 스타는 매력적인 개인이라기보다 일인 기업에 가깝다. 대중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모방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과정은 전략적 체계 위에 전개된다. 스타 뒤에는 수많은 자본의 논리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움직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스타들을 모방하는 대중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의 결과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타들을 좋아하고 선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됐느냐고 반문한다. 모방의 행위 자체가 만족감과 즐거움을 준다면 무슨 문제냐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완전히 그릇됐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흐름들은 단순한 모방의 문제를 넘어선다. 스타에 대한 모방이 여성의 성적 상품화와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공중파와 유선방송에서 가장 유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스타들의 짝짓기이다. 스타들은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염한 자태를 강조하는 몸짓을 보인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를 둘러싼 쟁탈전이 연출되기도 하고 이성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자신이 지닌 성적 매력을 과장하기도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몇몇 톱스타들의 인기전략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적 매력이 수익성의 지표로 가늠되는 것이다. 문제는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행동들이 일상생활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일부 프로그램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정성과 유해성으로 이미 여러 번 경고를 받은 바 있는 몇몇 유선방송 프로그램들에서 성적 매력은 주요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들은 한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음란한 접촉을 시도하고 자발적으로 속옷을 드러낸다. 마치 스타가 그러하듯 대중 앞에 선 여성들은 성적 행위를 연상케 하는 과도한 몸동작으로 환호성을 자아내고자 한다. 월드컵 응원 인파 속에서 선택된 여성에 대한 카메라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청녀’ ‘엘프녀’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에는 선정적인 관음증적 호기심이 숨어 있다. 과잉을 우려하는 일부 기사들조차 그에 앞서 그녀들의 노출을 전시하는 데 주력한다. 우려의 어조가 사진의 선전성에 가리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모방'도 가려서 하는 지혜를 주인공이 된 여성들은 한결같이 스타가 된 듯,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그녀들이 즐겁게 선택했다고 믿는 행위들은 그녀 자신의 주체성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들이다. 그녀들이 즐기고 있는 행위들이란 실상 조직된 계산의 실행에 가깝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가시적 유혹이 많아지고 감각의 역치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핑크의 노래처럼 스타를 모방하는 여성들이 모두 멍청한 여자일 리는 없다. 그보다는 여성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산업 시스템이 더욱 노회해졌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 여성은 좀 더 현명해져야 할 듯싶다. 선택 자체도 전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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