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한 해를 정리하며

한해가 참 빠르게 간다. 몇 해 전부터 나는 이맘때가 되면 늘 그 생각을 한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또 느낌보다 참 빠르게 간다고. 그런데 얼마 전 군에서 휴가를 나온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한테는 일년이 빠르게 가는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참 늦게 가요.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랬고, 대학에 들어가 보낸 1년은 정말 후딱 갔는데 다시 군에 가서 보낸 1년은 정말 늦게 가요.” 돌아보니 나 역시 군에서 보낸 시간들은 참으로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같은 시간도 이렇게 체감 속도가 다른 것이다. 지난 연초에 나는 몇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는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었다. 바로 지난해 이맘때 나는 몇 년 동안 고생하던 허리 디스크 때문에 수술을 했고 몸이 아픈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해가 가는 시점에 돌아보면 그래, 운동은 비교적 열심히 한 것 같다. 둘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금연의 약속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금연 역시 허리 수술을 받으면서 동시에 실천하기 시작했다. 혹시 실패를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실없는 사람’ 소리를 듣지나 않을까 싶어 대외적으로 금연 결심을 공포하지도 못하고 무척 소극적인 자세로 시작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처음 금연을 결심할 당시 나에게 담배 여덟갑이 남았는데(하루 평균 두갑 반을 피우는 헤비 스모커라 늘 그렇게 열갑을 한꺼번에 샀다) 혹시 실패하면 다시 피울 생각으로 그 담배를 버리거나 남에게 주지 않고 몇 달을 내가 따로 보관했을 정도였다. 이때의 일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금연이 남다른 결심과 남다른 각오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처럼 소극적으로 실패에 대한 생각까지 미리 하면서도 하루하루 날짜를 늘려가다 보면 그것이 어느새 한달이 되고 두달이 되고, 그러면 또 이제까지 금연을 실천해왔던 날들이 아까워서라도 담배를 더욱 멀리하게 되고, 그 사이 몸도 서서히 그것의 중독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힘들게 사는 이웃들을 조금이라도 보살피며 살자는 것이었다. 내 몸이 남들처럼 튼튼하지 못하니 그런 복지시설에 나가 자원봉사 같은 것은 하기 힘들더라도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일은 한해가 지나가는 지금 생각하면 늘 미약하고 부끄럽다. 결심할 때나 그 결심을 다시 다질 때의 기준은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 인데 막상 실천한 부분을 돌아보면 그것은 늘 ‘최소한의 최소한’에 머물러 있다. 돌아보면 늘 이렇게 부족한 것만 있다. 그런데도 성급하게 내년에는 올해의 결심들에 또 한가지를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몸 때문에 고생을 했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해 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으니 앞으로 서서히 내 몸에 몸으로 하는 노동의 옛 기억을 되찾아줘야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농촌에서 자라 어른들의 일을 늘 옆에서 도왔다. 그러느라고 저절로 어른들의 일을 배웠다. 삽질도 배우고 지게질도 배우고 꼴을 베며 낫질도 배웠다. 그런 것뿐 아니라 가을이 되면 초가지붕의 지붕을 다시 얹느라 어른들이 이엉을 엮는 옆에서 이엉도 엮었다. 그러나 지금 내 몸과 손은 그것을 추억하기만 할 뿐 그것을 재현해낼 만큼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하는 수고는 그 자체로 자신에 대한 선행이다. 예전에 자연과 함께 자랄 때 그랬듯 앞으로 다시 내 몸과 손이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12월이고 스스로 한해를 조금씩 정리해볼 시기가 됐다. 그리고 또 한해의 새로운 계획을 세울 시기가 됐다. 해가 바뀐 다음에 그 일은 너무 늦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뜻 깊은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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