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비례대표 11번 박근혜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전국구(현 비례대표) 14번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국민회의의 세를 가늠해봤을 때 당선이 불가능한 순번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국민회의는 25.3%의 득표율을 얻어 13번까지 금배지를 달았지만 14번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자동 탈락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비례대표 순번이 11번으로 결정됐다. 1번에 이름을 올려 힘 있게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과 끝 번호 혹은 불출마를 선택해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의 절충인 셈이다. 1번, 끝번, 불출마 같은 극단의 세 꼭지점과는 달리 11번은 애매한 숫자다. 1번의 상징성을 지니지도 않을뿐더러 끝번과 불출마의 절박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짐작 가능한 박 비대위원장의 의중은 원외가 아닌 원내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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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박 비대위원장이 원내에 있어야 책임감 있게 대선까지 당을 끌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새누리당은 '박근혜 원톱체제'로 구성된 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던 17대 대선과 달리 이번 18대 대선에선 박 비대위원장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또 다른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비례대표 의원'이라는 직함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김 전 대통령이 15대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대선 가도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을 성공시키며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혹자는 박 비대위원장이 과거 김 전 대통령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로 그때 당시와 지금의 정치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무엇보다 '정치적 쇼를 싫어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쇼가 아니더라도 진정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했다. 11번이라는 숫자 속에 얼마나 큰 절박함과 진정성이 포함돼 있을까.

권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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