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7월 10일] <1745> 배틀 오브 브리튼


1940년 7월10일 오전6시30분, 영국 남부. 독일 폭격기들이 하늘을 덮었다. 목표는 주요 선박과 산업시설 및 레이더 기지. 영국은 전투기를 급히 띄웠으나 피해가 컸다. 독일의 히틀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때리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공습을 택한 이유는 세계 최강 영국 해군을 의식했기 때문. 영국이 보유한 670여대의 전투기로는 서부 유럽 지역에만 2,670여대가 배치된 독일의 공군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작전의 배경이었다. 영국만 굴복시키면 전쟁을 일단락할 수 있다는 히틀러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장이 무너지고 도시가 불타도 영국인들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10월 말까지 4개월 동안 이어진 공습을 통해 독일은 전투기 873대와 폭격기 1,014대를 잃었다. 인명 손실도 컸다. 조종사 2,698명이 전사하고 638명이 실종됐으며 967명이 포로로 잡혔다. 영국은 1,547기의 항공기 상실과 조종사 544명 전사, 422명 부상에 민간인 사망 2만3,002명, 부상 3만2,138명이라는 희생을 치른 끝에 나라를 지켜냈다. 독일의 영국 폭격작전은 히틀러에게 개전 이후 최초의 좌절을 안기며 2차대전의 흐름을 갈랐다. 영국의 승리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불굴의 항전 의지와 공업력 덕분이다. 영국의 제조업은 월 500대씩 전투기를 쏟아내 월 230대 생산에 그친 독일을 압도했다. 미국으로부터 제공된 막대한 전쟁물자도 승리를 도왔다. 영국인들은 공습과 저항을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이라며 자랑스럽게 기억하지만 비슷한 위기가 온다면 당시처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절반을 차지하던 영국의 제조업 비중은 12%로 쪼그라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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