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금융 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면서 촉발된 미국 월 스트리트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번 시위는 일시적인 이벤트를 넘어서 점령 시위대가 ‘국제 행동의 날’로 정한 15일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세계 1,000여개 도시에도 동시 다발적인 시위가 펼쳐질 전망이다. 경제전문지 ‘포천’에서 10년 넘게 취재 전선에서 뛰었던 베테랑 기자 출신 저자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한 미국 젊은이들이 월 스트리트에 분노하는 현상을 놓고 ‘금융 위기가 왜 발생됐으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구절 “지옥은 텅 비었고, 모든 악마들이 여기에 있도다”에서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All the devils are here)라는 제목을 따온 저자들은 일명 악마로 불리는 월가의 부호들과 정치가, 경제관료 등의 행보와 증언을 마치 소설처럼 생생하게 다룬다. 저자들은 우선 1980년대 금융 재앙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MBS(주택저당채권 담보부증권)라는 금융상품이 만들어진 유래부터 살펴본다. MBS는 모기지를 한데 모아 채권화한 것으로, 비유동 자산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유동자산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이점 때문에 금융계에 일대 혁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MBS에서 파생한 다양한 금융상품에 헤지펀드가 무리하게 투자하고, 이것이 자산가치 하락과 맞물리면서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더 나아가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리던 주택 소유의 신화가 불러온 허황된 꿈과 욕망, 주식 투자의 아슬아슬한 심리 게임, 무분별한 파생 상품의 결합과 거래에 따른 위험, 수학적인 통계 시장의 치명적 오류 등이 글로벌 금융 위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촘촘하게 엮어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들은 월가 점령 시위대처럼 금융 위기의 근본적인 책임을 특정한 일부 계층에게 전가시키지 않는다. 저자들은 “금융 혁신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 혁신 앞에 무너진 인간 본성이 문제이며 현대 사회의 지나친 욕심과 오만이 불러온 부정과 부패에 대해 각성하면서 인간의 윤리성과 건전성을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저자가 제목에서 언급했던 악마들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물적 욕망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 1만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