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드라기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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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이식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의사가 물었다. "다섯 살짜리 소년의 심장을 이식 받겠습니까?" 환자는 너무 어려서 안되겠다고 거절했다. "마흔 살 투자은행가의 것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들 심장이라는 게 있어요? 거짓말 마시오(환자)" 그러면서 환자는 75세 중앙은행장의 심장을 선택했다. 너무 낡은 심장이 아니냐고 의사가 의아해하자 환자가 답했다. "그들은 마음(heart)이라는 걸 한번도 쓴 적이 없으니 새것이나 다름없어요."


세계 주요 중앙은행 중 하나인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좋아하는 유머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신념(심장)은 갖고 있되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마치 심장이 없는 듯 냉철하게 행동해야 중앙은행장의 어려움에 관한 이 유머를 그는 누구보다 공감한다. ECB 총재는 처지가 너무나 다른 18개 국가의 이해관계를 조율해가며 차가운 이성으로 까다로운 결정들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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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7세인 이 노련한 중앙은행장은 각국의 동의가 필요한 정책실행보다는 화려한 언어를 무기로 시장을 어르기도 달래기도 하면서 통화정책을 펼쳐왔다. 재정위기 이후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경제혼란이 극에 달한 때는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Whatever it takes) 유로화를 지키겠다"는 말 한마디로, 재정위기국의 국채가 급락할 때는 무제한채권매입(OMT) 프로그램 발표만으로 시장을 급반전시켰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 경기가 계속 지지부진하자 지난해부터는 통화정책회의 때마다 추가부양 립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번번이 빈손이었다. '립서비스의 황제'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난도 개의치 않았다. 긴축을 강조하는 독일이 눈을 부릅뜨고 부양에 반대하고 남유럽 국가 등은 빈사상태인 상황에서 그는 허용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을 한 셈이다.

요즘 드라기 총재는 은행 밖에서 더 바쁘다. 말발도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 추가 금리인하 등의 행동에 나섰지만 도통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을 오가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는 구조개혁에 대한 쓴소리를 하고 독일에는 다른 유럽국가에 긴축 압박을 거두라고 훈수를 둔다. 최근 리투아니아를 찾아서는 "통화강세에도 불구하고 구조개혁을 발판으로 경제성장에 성공해 다른 유럽국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인기 없는 구조개혁은 뒷전에 둔 채 유로화 절하와 양적완화를 압박하고 있는 각국 중앙정부에 "ECB 부양에만 매달리지 말고 정부도 자기 몫을 하라"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시장은 ECB의 양적완화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통화약세와 낮은 금리는 자산가격을 부양하고 신용경색은 막을 수 있어도 결국 병들어 있는 유럽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충고다. 환율 조정과 기준금리 인하를 단골 부양 메뉴로 올리고 있는 우리 정책결정권자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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