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부동산대책보다 신뢰회복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간은 누구의 것일까. 현대인은 누구나 자기 시간을 자신이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믿지만 중세 때는 달랐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날이 올 때까지 인간은 단지 현세를 유보받고 있다고 믿었다. 돈을 빌려줘도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저 넓디넓은 땅은 누구의 것일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국유화된 토지를 제외하면 모든 땅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 때 땅은 농노들이 집단으로 보유했다. 신분의 자유는 없었으나 생산수단은 갖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15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인클로저 무브먼트가 일어나 울타리가 쳐지면서 경작지가 목장으로 전환되자 농민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거나 공업노동자로 전락했다. 중구난방 비책으로 나라 혼란 농민들의 저항이 심해지자 영국 정부는 고심 끝에 별 효과도 거두지 못하면서 인클로저 금지령을 자주 내려야 했다. 30여차례에 이르는 정부의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폭등하는 집값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갖가지 주장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정책 실패에 대해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네 탓이라는 비난까지 오고 간다. 일부 시민단체는 판교를 공영개발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소형평형 의무제나 층고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게 해법이라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대형 아파트를 많이 짓는 게 해법이라는 상반된 논리다. 신도시 건설 논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공급확대를 위해 판교급 신도시를 몇곳 더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주변 땅값만 올리는 역효과가 날 것이므로 서울 강북 개발이 더 실효성이 높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전반기 내내 부동산시장 안정을 최상의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왔는데 왜 집값은 잡히지 않을까. 다주택 보유자 중과세와 고가주택 종합부동산세 부과 등 수요억제정책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데 왜 중대형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을까. 물론 단순히 말하면 투자할 곳은 없고 돈은 넘쳐흘러 가장 안전할 것으로 여겨지는 부동산에 묻어두자는 기대심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보면 정부가 2년 전 내놓은 10ㆍ29대책이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실수요와 가수요의 구분도 없는 부동산 열풍에 정부가 신뢰를 잃어버린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을 넘어섰고 선진국의 전례로 봐 보급률이 115% 정도 되면 주택시장이 안정화한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수도권 자가주택보급률이 이제 겨우 50%를 넘긴 사실을 감안하면 반드시 외국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처지다. 더욱이 선진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1%인데 비해 아직 0.13%인 우리 실정에서는 세금이 무서워 큰집 갖기를 포기하는 부자는 없을 것이다. 주택거래허가제 합의 필요 결국 싼 집은 남아돌지만 살 사람이 적고 비싼 집은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부족한 현상이 계속되는 이유다. 시장을 무시한 정부의 수요억제정책이 몇백년 전 영국의 인클로저 금지령처럼 실효성이 없다 보니 집 없는 서민층 실수요자만 쫓겨난 영국 농민처럼 성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시간도 땅도 내 편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신도시를 더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할 뿐더러 가수요도 엄연한 수요이기 때문이다. 결국 금리인상을 제외하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위헌 논란이 있지만 10ㆍ29대책 때 이미 제시한 주택거래허가제밖에 없는 셈인데 시행에 앞서 국민적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적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정부가 신뢰를 되찾으면 자연스럽게 국민의 부동산 기대심리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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