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술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일까. 올해 상반기 국내에 수입된 술을 조사한 결과 와인이 처음으로 양주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전투적인 분위기가 이제는 가볍게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와인을 접해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술이 약했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무의 성격상 고객들과 폭탄주로 이어지는 저녁 식사가 잦아지며 괴로움을 겪던 중 와인 바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들어가본 후 와인 아카데미 초급 과정에 등록했고 이후 동료들과 음식과 와인을 매칭하는 '마리아주'를 시작해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애호가로서 꼽고 싶은 와인의 으뜸가는 매력은 대화를 통해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어떤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 관계와 대화가 정의되는 경향이 강한데 폭탄주나 양주 같은 독한 술은 상하 관계의 조직에서 자주 선택되는 주종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와인은 마실 때 부담이 적으면서도 조금씩 마시기 좋아 속 깊은 대화에 적합하다. 서로 관심만 있다면 다양한 와인에 대해 얘기하며 대화가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주량 이상 마시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된다.
필자가 리드하는 와인 동호회에서는 만나면 서로 이름이나 직급이 아닌 별칭으로 부른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와인과 관계된 지명이나 브랜드·기구의 명칭을 따 샤토·라피트·샤블리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의외로 '계급장 떼고' 회원들 간에 평등한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리더십도 와인에서 배웠다.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와인처럼 리더는 직원들의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는 자신이 대화를 많이 나누는 수평형 리더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수평적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며 핵심은 경청, 그리고 누구나 말을 쉽게 꺼낼 수 있게끔 하는 분위기 조성이다.
그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리더의 몫이자 재주다. 여의치 않게 느껴진다면 와인의 힘을 빌려보라. 와인 잔이 채워지면 직원들의 즐거운 얘기가 시작이 될 테니 잘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