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문종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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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9일 제17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언론의 보도경쟁도, 예비 후보자들의 마음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계기로 도입, 확산되고 있는 매니페스토 운동으로 어느 때보다도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선거문화로의 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다. 시민단체의 자발적인 활동과 언론들의 호응, 중앙선관위의 노력 등이 어우러져 매니페스토 운동이 폭넓게 국민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론조사를 접하면 매니페스토 선거에 대한 희망도, 선거문화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지적됐던 문제들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대선 예비후보자 선호도 조사를 잇따라 실시하고 방송3사와 대부분의 언론들도 이를 바탕으로 경쟁하듯 지지율 변화추이를 발표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의 선호도 조사는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들의 고질적 악습이며 바꿔야 할 구태라고 본다. 예비후보들의 이름만으로 문항을 설정해 지지율을 묻는 선호도 조사는 과거 대선보도의 악습인 경마식 보도에서 조금도 벗어난 것 같지 않아 심히 유감이다.
각각의 후보자가 어떤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예비후보자의 이름만으로 선호도를 묻는 현행 방식의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구태를 답습하는 언론에 묻고 싶다. 작금의 행태는 ‘흥미위주의 가십 보도’와 ‘폭로 저널리즘’과 다를 바 없으며 ‘경마식 보도’의 전형이다.
언론의 이러한 구태로 인해 대선 예비후보자들이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책임 있는 약속(대선 매니페스토)이나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을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불분명한 이미지만으로 국민들의 선택권을 강탈하고 있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여론조사는 가수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기 순위를 결정하라는 것과 같으며, 거대 유통회사가 가수의 대표곡도 발표하지 않고 음반 구입을 강매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언론은 변해야 한다. 저급한 황색언론이나 폭로언론이 아닌 사회적 공공제로서의 정론을 지향하고 있다면 앞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 문항에 후보자들의 대표공약이라도 삽입해 선호도를 묻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고 지속적으로 후보자의 정책을 국민에게 알려주고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상을 모색해가며 급변하는 시대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원대하면서도 적확한 비전을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국민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생활정책을 끊임없이 후보자들에게 제공해 정치와 국민생활, 예비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소통을 원활히 해줘야 한다.
17대 대선은 시대정신의 선택이며 21세기 대한민국의 향후 10년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신뢰공동체 구현을 위한 충분한 소통과 질서 있는 참여 속에 전국민적인 축제로 치러져야 한다. 따라서 후보들은 잘 준비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정책대안을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야 하며 유권자들은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올바른 시대정신을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유권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의제에 관심을 쏟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며 깨어 있는 시민을 만드는 언론의 몫을 감당해줘야 한다. 경마식 보도를 하기보다 정책중심으로 심도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주는 정론의 길을 걸어주길 바란다. 또한 대선보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유권자 중심’과 ‘정보서비스 역할’로 설정함으로써 후보자들의 구체적 약속과 책임 있는 이행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민주주의ㆍ신뢰공동체 구현에 앞장서주기를 다시 한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