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와 함께 4,900만 붉은 악마까지 피가 뜨거워진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17일 오후 8시30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B조 예선 2차전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강호 아르헨티나와 격돌한다. 허정무 감독으로선 ‘태권 축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기회이고, 태극전사로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원정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객관적인 전력은 아르헨티나의 압도적인 우세가 점쳐진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표팀과 관련한 질문에 ‘피식’ 웃었다. 그러나 투지 만큼은 태극전사가 최고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24년 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격돌했다. 당시 한국을 3-2로 꺾은 아르헨티나는 승승장구한 끝에 우승했다. 이때 허정무 감독과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은 선수로서 격돌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마라도나를 밀착 수비한 허정무 감독을 두고 ‘태권도 축구’라고 혹평했다. 마라도나 감독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이를 염두에 둔 듯 “발차기 등 반칙에 대해 심판이 즉각 옐로카드를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정무 감독은 “축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고 응수했다. 당시 경기 장면 대신 <타임>에 적힌 문장 몇 줄만 확인한 외신 기자와 ‘축구가 아니라 태권도였다’고 엄살을 부린 마라도나 감독을 향해 허 감독은 “내가 태권도를 했다면 심판이 레드카드를 뽑았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체력을 앞세운 빠른 축구를 구사하는 한국은 유럽보다 남미를 상대로 잘 싸웠다.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에선 특히 이변이 많다. 극단적인 수비에 나선 스위스는 17일 오전 ‘무적함대’ 스페인을 1-0으로 제압했다. 스위스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을 꺾은 것처럼 태극전사가 아르헨티나를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르헨티나 언론의 태극전사 비하에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은 상처를 입었다. 아르헨티나 스포츠신문 <올레>는 1면 제목을 ‘한국 반칙’으로 뽑고 “우리는 메시에게 지능적인 반칙을 해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다”는 박주영의 발언을 소개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 이원재 미디어 담당관은 박주영이 반칙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을 누빌 태극전사 11명은 아르헨티나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2002년 한ㆍ일 월드컵 4강 진출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