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 미국 플로리다 탬파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의 주주총회가 그 어느 때보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주총에서는 월가를 대표하는 제이미 다이먼(사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권한을 제한하는 회장과 CEO의 분리 안건이 상정된다. 만약 통과된다면 월가 최고 권력자중 한 사람인 제이미 다이먼의 거취와 JP모건의 지배구조 변화를 넘어서, 월가의 권력구조 개편을 촉발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회사의 경영을 감독하고,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회장과 CEO를 분리해야 한다는 안건은 지난해 주총에서도 제기돼 40%의 지지를 확보한 바 있다. 지난해 '런던고래'로 불리던 브루노 익실의 파생상품 투자실패로 6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다이먼 회장의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주주들의 비판이 커지면서 올해도 같은 안건이 상정된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지자체 공무원들의 연금을 관리하는 아메리칸 페더레이션 오브 스테이트의 리사 린슬리 이사는 "JP모건의 경우 특별히 상임회장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며 "두 가지 일(회장직과 CEO)을 한 사람이 동시에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금은 7만8,000주의 JP모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는 ISS는 이달 초"JP모건 경영진이 이번 주총에서 제시한 이사 후보 가운데 3명을 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회장과 CEO를 분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JP모건 이사회는 현재 리 레이몬드 전 엑손모빌 CEO, 엘런 퓨터 뉴욕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로이터는 최근 다이먼 회장이 이사들의 선임에도 깊숙이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신규 이사 선임을 담당하는 이사회 내 지배구조 위원회는 그 동안 경영진의 추천에 의존해왔다. 다른 은행들이 외부 헤드헌팅 업체들을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다이먼이 뽑은 이사들이 그의 의사에 제동을 걸기 어렵기 때문에 이사회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한 셈이다.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형은행들이 이미 두 직위를 분리하고 있다는 점도 주주들의 요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분리 요구에 맞서 권력을 방어하려는 다이먼 회장 측은 안건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주주들에 대한 물밑공략을 진행하고 있다. 레이몬드, 윌리엄 웰던 이사 등은 최근 기관투자자들을 접촉해 이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다이먼 회장이 골드만삭스를 이끌고 있는 로이드 블랭크페인과 수 차례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블랭크페인 역시 두 직위를 겸직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지난 3월 '독립적인 선임이사(lead director)'를 이사회에 포함시키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해 주주들의 직위분리 요구를 무마한 바 있다.
지난 6일 투자자들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다이먼 회장은 과반수 이상의 주주들이 회장ㆍCEO 분리안에 찬성표를 던질 경우 안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마도 안 좋은 점 한가지는 내가 JP모건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권한이 제한된다면 JP모건과 결별하겠다는 압박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JP모건은 최근 회사규정을 바꿔 현재 진행중인 주주들의 중간 투표현황 공개를 중단했다. 최종 투표결과는 주총현장에서 공개된다. 이를 두고 분리안건을 지지해온 주주들은 경기 중간에 홈팀에게 유리하도록 경기규칙을 바꾸는 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안건이 주총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다이먼에 대한 주주들의 신뢰는 여전히 큰 편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만 하더라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제이미를 100% 지지한다"며 "그 보다 나은 회장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설사 분리안건이 주주들의 과반수 찬성을 얻더라도 실행에 옮겨질 지는 알 수 없다. 회장의 선임은 이사회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건이 통과된다면 월가를 대표하는 다이먼 회장의 권위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또 주주들의 요구를 마냥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월가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인 다이먼 회장의 권력이 저물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