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街 돈 이머징마켓으로 이동보너스노린 매니저 '고수익 베팅'도 한몫
미국의 경제뉴스 케이블채널인 CNBC는 요즘 해외의 투자유망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신설, 방영하고 있다. 뉴욕증시가 3년째 죽을 쑤면서 월가 펀드들의 관심이 수익성 높은 이머징마켓에 쏠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수십조달러에 이르는 뉴욕 월가의 방대한 자금시장에 역류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국제금융시스템에 변화가 생기고 펀드 운영자들의 심리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 국제금융시스템의 역전
올들어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조건이 미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수익이 나오도록 바뀌고 있다.
세계가 동시 불황에 빠졌을 때는 국제유동성이 안전한 미국으로 유입됐으나 경기가 풀리면서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이머징마켓에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달러 하락도 미국 자본시장에 대한 매력을 잃게 하고 있다. 국제유동성의 유입은 통화강세에 비례한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한계에 이르면서 달러가 하락하고 달러표시 유가증권의 상대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월가의 경제전문가들은 최근의 달러약세는 시작에 불과하며 연착륙할 경우는 2년, 경착륙시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저금리 기조도 미국 자본시장의 수익률을 낮추는 조건이다. 단기금리가 40년 만에 최저인 1%대로 떨어져 돈이 많이 풀려났지만 뭉칫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테러와의 전쟁과 경기침체에도 불구, 부동산가격이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이런 여건을 대변하고 있다.
뉴욕증시의 또다른 문제는 최근의 주가 하락에도 불구,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블루칩 500개 종목(S&P500)의 주가수익률은 24로 과거 50년간 평균치 15보다 훨씬 높으며 대공황 직전의 최고 수위를 넘어서 있다.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수익저하에도 불구, 주가 하락률이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PER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 후유증으로 모든 상품 가격이 하락했는데도 뉴욕증시만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JP모건ㆍ메릴린치 등 대형 투자회사들은 최근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이머징마켓을 지목하고 한국ㆍ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의 성장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국제금융공사(IIF)는 이머징마켓 중에서 남미 국가는 아르헨티나의 국가부도로 해외자금 유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이 유망한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월가의 투자심리 변화
펀드매니저들은 지난 2년간 뉴욕증시가 하락, 큰 손실을 봤으나 올해는 이문을 남겨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연말에는 보너스를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 매니저는 위험성보다는 수익성을 우선하고 상승 여력이 높은 이머징마켓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또 엔론파산 이후 월가 투자자들이 미국기업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것도 해외시장을 찾는 이유다. 윌리엄스ㆍ타이코ㆍ엘파소 등이 줄줄이 회계를 분식하다 매출과 수익을 부풀린 혐의가 드러나고 미국의 간판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ㆍIBM마저 불신받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9월 테러 이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는 2차대전 이후의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있는 점도 국제자금이 미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테러 이전에는 국제분쟁이 발생하면 뉴욕 금융시장으로 돈이 몰렸으나 요즘은 미확인 테러 경고에도 뉴욕증시가 가라앉는 것이 이런 심리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